문화관광부는 문화산업의 주무 부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영화·음반·비디오·게임 등 다양한 문화산업을 관리·진흥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문화부의 테두리에서 보면 게임산업의 모법은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이하 음비게법)’이다.
일반적인 정서나 상식으로 볼 때 음반·비디오·게임이 하나의 법률적인 테두리 안에서 관리된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역사가 있다. 국내 문화산업,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제외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음반으로부터 시작했다. 음반이 당연히 영화와 달랐기 때문에 문화부는 ‘음반법’을 제정했다. 8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프로테이프) 산업이 커지자 문화부는 비디오를 음반의 확대개념으로 보고 ‘음반·비디오물에관한법률’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당시에 비디오는 불법물과 음란물이 난무했으며 문화부는 ‘음반·비디오물에관한법률’을 강력한 규제법으로 개정했으며 상당한 효과를 봤다. 90년 초 게임이 등장하자 이번에는 비디오물의 확대개념으로 게임을 파악하고 이 법의 테두리에 집어 넣었다.
그후로 여러번의 개정을 통해 현재의 음비게법이라는 모습을 띠게 됐지만 규제법이라는 근본적인 골격은 바뀌지 않았다. 99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음비게법의 제1조는 “국민생활 및 정서생활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 정서생활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을 골라내서 유통되지 못하도록 한다는 법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여러번 이름이 바뀐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여전히 막강한 심의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만 조금 다르다면 과거 비디오의 경우에는 음란물을 색출하는 데 주력했다면 게임에 있어서는 사행 도박성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만 다르다. 문화적인 규제는 강력하지만 산업진흥을 위한 조항은 음비게법 어디에도 없다.
시각을 바꿔 문화부의 게임정책을 살펴보자. 문화부는 지난 99년 2월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전초기지로 게임종합지원센터를 설립했다. 99년 말에는 2003년 세계 3대 게임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담은 ‘문화산업비전 21’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에는 예산 50억원을 투자한 ‘게임산업투자조합’도 결성했으며 올 하반기에 게임 투자조합을 하나 더 만들 방침이다. 2003년께는 아케이드 게임 산업단지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문화부는 막대한 국고를 투자해 게임산업을 육성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의 칼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 부처가 게임 산업을 국가적인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면 연간 수백억원을 투자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겠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를 통해 게임물에 대해 사사건건 심의하고 등급을 매기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정부 아니 문화부의 게임산업에 대한 문화부의 정책은 이처럼 이율배반적이다.
다행히 문화부는 음비게법이 규제 위주의 법률로서 게임을 21세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음비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게임·멀티미디어 콘텐츠 등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법적 개념을 정립하고 △업계의 진입장벽 철폐 등 사전 규제적인 요소를 폐지했으며 △청소년의 건전한 정서를 저해하는 사행성 게임물의 유통에 대한 사후관리기능을 강화하는 등 대폭 개정했다는 밝혔다.
실제로 개정안에 따르면 법의 목적이 “음반·비디오물·게임물·멀티미디어문화콘텐츠 등의 건전한 발전과 관련산업의 진흥으로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국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바뀐다. 선언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게임산업이 국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게임제공업 구분이나 신고 등록업 조항 등에 있어 규제를 완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음비게법 개정안이 통과된다손 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음비게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과정에서 성인 오락실 허용이
나 제작사 필증부착 등 일부가 바뀌었지만 문화부 원안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는다”며 “기존 음비게법이라는 테투리와 한계를 벗어 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몇몇 조항에서 규제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규제 위주의 법이라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규제장치인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대한 개정은 조금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 조항을 고친다고 규제법이 어느 한순간에 진흥법으로 바뀔 수는 없다는 것.
또한 게임이 디지털 콘텐츠의 핵심으로 유무선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있는 시장의 추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개정안의 게임물에 대한 정의는 오프라인 상태의 게임에 치중해 있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 등을 놓치고 있다. 멀티미디어문화콘텐츠라는 업종이 추가됐지만 이것으로 모든 디지털문화 콘텐츠를 끌어 안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게임을 음반이나 비디오 등 단방향 미디어의 연속선에서 파악하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업종을 추가하고 개념을 손질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문화부가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게임산업을 둘러싸고 관련법의 중복과 문화부 업무 중복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문화부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상반기 중에 ‘문화산업진흥기본법’ 등을 개정하고 콘텐츠 전담부서까지 신설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문화부는 게임·애니메이션·전자출판 등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만약이 이같은 정책이 실현된다면 문화부는 음비게법으로는 게임 산업을 규제하고, 새로 개정될 ‘문화산업진흥기본법’으로는 육성하는 셈이 된다. 같은 문화부 내부의 부서 중에서도 기존의 게임음반과는 규제를 담당하고 새로 신설될 ‘문화 콘텐츠’와는 육성과 지원을 담당하게 된다. 그나마 하나의 법과 조직 내에서 행해지던 규제와 지원이 다른 법률과 조직을 통해 별도로 이뤄지게 되는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같은 상황이 문화부가 생각하는 구도가 아니라면 음비게법을 규제가 아닌 육성법으로 전면 개정하든지 음비게법의 적용 대상에서 게임산업을 제외해 「디지털콘텐츠육성법」의 테두리로 옮기는 것이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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