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컴퓨터>숨고르기 후 재도약...무지개 뜬다

그동안 인터넷데이터센터(IDC)나 닷컴기업 위주의 시장전략을 펼쳐온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이 금융·통신·제조 등 전통적인 분야의 시장접근 전략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은 닷컴기업의 열풍과 경기호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전년에 비해 6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더욱이 굴뚝기업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기업들까지 e비즈니스 열풍을 타고 닷컴화 대열에 동참하는 바람에 사상 최고의 성장세를 구가했다.

이같은 열풍 덕분에 고객들은 중대형컴퓨터 공급업체들에게 선금을 주고도 2∼3개월이 지난 뒤에야 제품을 공급받는 기현상까지 일어났을 정도다. 일부 업체들은 비즈니스룰로 보면 갑과 을이 바뀌는 상황에서도 예정된 날짜에 시스템을 공급받지 못해 애를 태우는 상황까지 감수해야 했다.

더구나 닷컴 열풍에 뒤이은 IDC 구축 붐, 제조·유통·서비스 분야 일반기업의 차세대시스템 도입 붐 등은 이같은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수백대에서 수천대에 이르는 대규모 물량을 한꺼번에 싹쓸이 해버렸기 때문이다. 물건이 없어서 못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닷컴기업들의 부진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거의 모든 기업들이 긴축재정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금융권 구조조정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메이저 금융기업들의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통신업체들이 앞장서 구축한 IDC의 매출도 신통치 않다. 중대형컴퓨터 공급업체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은 지난해에 비해 30∼40% 정도 늘어난 매출목표를 잡아놓았으나 이의 절반 수준인 15∼20%의 증가율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표정을 관리해야 할 정도로 사상 유례없는 활황세를 만끽했으면서도 이들 업체들이 올해 다소 움츠러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은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의 성장세를 낙관하고 있다. 경기하강과 이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열기가 다소 수그러들기는 하겠지만 e비즈니스와 차세대정보시스템의 구축 등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금융·제조 등 전통적인 업체들은 특히 B2B 등 e비즈니스가 미래는 물론 지금 당장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국통신·SK텔레콤 등 대형 통신업체들은 이미 1000억원대 이상의 뭉칫돈을 정보화 예산으로 책정해 놓고 있다. 금융권의 경우도 일부 금융기관간 짝짓기가 가시화된 예를 제외하고는 지난해보다 20∼80% 가량 높은 금액을 정보화 예산으로 책정해 놓았다. 일부 금융사가 금융기관간 전산통합시 상대 금융기관보다 유리한 협상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의로 전산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이에따라 한국IBM·한국HP·컴팩코리아 등 외국계 중대형컴퓨터 업체들과 삼성전자·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자이온리눅스 등 국내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은 이 분야 시장과 웹서버·캐싱서버 분야 및 학교·연구소 분야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높인 신모델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또 보안 등 차별화된 솔루션 확보를 위해 국내 솔루션개발 업체들과의 전략적 제휴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로 대별되는 윈텔진영의 경우는 엔터프라이즈서버용 운용체계(OS)인 윈도2000과 IA64계열의 64비트 프로세서인 아이태니엄 프로세서를 앞세워 유닉스진영이 선점하고 있는 고성능컴퓨팅 시장을 파고든다는 전략이어서 이 분야 시장을 놓고 관련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특히 윈도2000의 최상위 버전인 데이터센터 서버는 최대 32웨이 SMP(Symmetric MultiProcessing)와 64GB 메모리까지 지원함은 물론 클러스터링과 로드밸런싱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데이터웨어하우스(DW)·고객관계관리(CRM) 등 애플리케이션서버 분야와 온라인분석처리(OLTP)시스템, 대규모 ISP 및 웹호스팅 등의 분야에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리눅스진영의 대약진도 올해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시장의 판도 변화를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리눅스는 이미 PC서버·워크스테이션 등 로엔드시스템에서부터 클러스터 슈퍼컴퓨터 등 하이엔드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IBM·컴팩코리아·SGI코리아 등 일부 외국계 업체와 리눅스원·리눅스인터내셔널·시네티아정보통신 등 전문업체들은 올해를 리눅스 확산의 원년으로 삼는다는 전략이어서 대폭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에는 리눅스를 채택한 클러스터 슈퍼컴퓨터가 등장해 학교·연구소는 물론 공공기업과 일반기업에 활발하게 공급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클러스터 슈퍼컴퓨터는 리눅스의 가격적인 이점과 운용체계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이파워게이트와 자이온리눅스시스템, 트론웰(딥브레인시스템즈) 등 몇몇 업체에 한정돼 있지만 점차 다양한 분야의 솔루션을 갖춘 업체들이 이 분야 시장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유닉스진영 역시 e비즈니스시대의 도래와 함께 고성능을 요구하는 DW·CRM·전사적자원관리(ERP) 등의 기간업무 분야와 대규모 데이터 트랜잭션 처리를 요하는 분야의 시장에서는 유닉스시스템의 수요가 여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통신·금융 등 대규모 수요가 걸려있는 분야의 경우 안정성을 앞세운 유닉스서버가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이 분야 종사자들의 보수성을 감안하면 윈텔진영이나 리눅스진영이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닷컴기업들과 IDC의 윈도NT서버의 수요가 폭증한데 이어 컴팩·MS·인텔 등의 「선번 전략」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유닉스업체인 한국썬이 선전한 것으로 미루어 당분간 유닉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썬은 더 나아가 지난해 사상 최고인 80% 이상의 성장세를 구가하면서 한국IBM과 한국HP를 제치고 유닉스서버 분야 정상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에도 이같은 판세가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메인프레임시장은 지난해 수준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에도 국내 메인프레임시장은 전년에 비해 오히려 소폭 감소했으며, 이같은 현상은 올해에도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변화를 예로 들어 올해에는 PC서버와 유닉스서버간 영역파괴 현상이 두드러지고 리눅스진영의 약진이 예상되고 있지만 워크스테이션·PC서버·유닉스서버·메인프레임·슈퍼컴퓨터 등 시스템 수요는 지난해에 비해 소폭 증가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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