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 내 일부 출연연이 올해 차기 기관장 선출을 앞둔 가운데 전형적인 「레임 덕」 현상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 13일 차기 기관장 선출이 결정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재단, 기계연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 등 출연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개 기관이 줄줄이 기관장 선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몇 주에서 많게는 4∼5개월간 현 기관장의 임기가 남아 있지만 이미 연구소 구성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차기 기관장 선출에 쏠려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무 추진도 제대로 될 리 없다. 각종 연구개발 진행도 차기 기관장을 염두에 둔 탓에 탄력을 받기 힘들다는 게 대다수 연구원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이달로 임기가 만료되는 ETRI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겉으로는 큰 움직임이 없지만 내부적으로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벌써부터 차기 원장의 「입맛」에 맞는 연구 프로젝트 구상에 분주, 원장 선출 이후 레임 덕 현상이 줄곧 이어지고 있다. 현 원장의 업무 공백을 우려, 차기 원장의 취임 전까지 휴가를 낸 상태이지만 레임 덕은 피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원장 모집공고가 나간 KAIST와 과학재단도 마치 폭풍전야 같은 「정중동」의 분위기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새로운 원장에 누가 선출될 것인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느슨한 업무 공백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다름아닌 현 연구개발과제의 「지연과 취소」다. 3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과제가 많은 출연연들은 새로운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연구개발과제의 향방이 틀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연구원들이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진 연구과제라 할지라도 불안해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개월간 레임덕이 지체되다 새 기관장이 들어설 경우 이미 시기를 놓쳐버린 연구개발과제들이 본 궤도에 올려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기획예산처가 구조조정 미비를 이유로 일부 출연연을 대상으로 기관 고유사업비 배정을 유보, 대덕연구단지는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 차원에서 기관장이 추진력있게 일할 수 있도록 「연임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IMF 이후 기관장들이 지난 3년간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의 악역」을 맡아야 했다면 이제부터는 소신있게 기관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연구개발정책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풍토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구태의연한 행정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과학기술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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