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 대표들이 청와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청와대를 찾은 사람들은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공통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국내외 기업간 이해증진을 위해 15개 주한 외국상의를 중심으로 구성한 주한상공회의소협의회(KIBC) 회장단이었다. 이들이 김 대통령을 만나 한 얘기는 한결 같았다.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해줄 것을 촉구했고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달라는 건의가 주를 이뤘다.
그 중에서도 모리시마 히데카즈 서울재팬클럽 부이사장의 얘기는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의 노사문제를 「타오르는 불」에 비유했다. 즉 노사문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이것이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외국기업의 유치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외국계 제조업체들에 있어서 우리나라 투자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투자목적이나 경영방식이 달라 성공하는 기업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계 제조업체들이 국내에 진출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외국계 업체들이 느끼는 우리나라 진출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객관적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얼마전 미국 컨설팅회사 AT커니가 세계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가 우리의 투자환경실정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AT커니가 세계 10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향후 3년 이내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17위에 랭크됐다. 외국 제조기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하기 위해 평가하는 의사결정 포인트는 다양하다. 현지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우선돼야 하는지, 제조여건이 고려돼야 하는지 기업의 경영목표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0개가 넘는 국가 가운데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 유명CEO들이 보는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은 신뢰도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를 하나 더 소개한다. 얼마전 세계 유명컨설팅그룹인 미국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세계 주요 35개국을 대상으로 시장의 불투명성 정도를 지수화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불투명성지수(opacity index)」다. 이는 자본시장이 얼마나 불투명하고 불확실한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PwC가 공개한 불투명성지수는 각국 자본시장의 △부패정도 △법률시스템 △기업지배구조와 기업정보의 투명성 등을 포함한 회계기준 △경제정책 △규제 등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산정했다.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PwC의 조사결과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서 75점을 받았다. 35개국 중 중국·러시아·인도네시아·터키 다음으로 다섯 번째로 높은 점수였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외국기업들이 사업을 해 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는 외국계 제조업체들은 많다. 현재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들은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다. 진출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을 통해 현지 생산공장을 짓거나 합작형태로 투자한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해마다 몇 개의 업체들이 사업을 철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투자시스템이나 경제정책, 규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다소 유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업체들의 철수가 전적으로 우리의 투자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는 않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전자정보통신 관련 제조업체들은 우리나라에서 이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그동안 이방인으로 취급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국내 전자정보통신 분야의 고용이나 기술개발, 수출 등 각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틀림없다. 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정부가 외국자본에 대한 개방폭을 넓히면서 이들 업체는 어느덧 한국경제를 이끄는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들이 우리나라 전자정보통신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량적으로 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산업전반에서 그 비중은 적어도 30%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용효과도 적지 않다. 국내에 진출해 있는 전자정보통신 해외기업이나 합작회사들의 고용인원은 수만명에 이르고 최근 들어 그 수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의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건물의 주인도 외국인으로 속속 바뀌어지고 있다. 여의도의 중요한 빌딩이 이들 업체에 넘어가고 수도권 인근지역 공단에도 외국 직접투자기업의 공장이 많이 눈에 띈다.<신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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