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나이·성별·지위 등 그 어떤 것도 초월해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그래서 전 30대 프로게이머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지난달 22일 끝난 한게임닷컴배 PKO세컨드스테이지의 여왕에 등극한 한게임의 윤지현(30)은 쟁쟁한 신세대 스타들을 따돌리고 우승을 달성, 프로게임계에서 최초의 30대 신화를 달성했다.
특히 요즘 뜨고 있는 스타들의 대부분이 10대임을 감안하면 그가 이룩한 쾌거는 더욱 빛을 발한다.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일에 인생을 소비하기도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말처럼 20대 이후 윤지현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91년 서울여대에 입학해서는 학생운동에 신념을 걸고 매일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생활한 적도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 수능에 도전하기도 했다. 질고의 노력 끝에 96년 서울대 심리학과에 입학해서는 바둑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기초지식도 모른 채 배운 바둑도 이제 아마 초단의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실제로 윤지현을 미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97년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윤지현은 바둑반 친구들과 어울려 희대의 히트작인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다. 윤지현은 처음엔 단순히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스타를 하기 시작했으나 이내 스타의 매력에 도취돼 PC방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밤 새도록 게임하기에는 고시촌만한 곳이 없어요.』
하지만 책과 씨름하던 고시생이 프로게이머로 전향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부모님들의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특히 무엇보다 윤지현을 어렵게 했던 것은 여성이라는 벽이었다.
99년 8월, 고시공부를 완전히 접은 채 게임삼매경에 빠진 윤지현은 하루 5∼10시간씩 맹훈련에 들어가 한달평균 200전 이상의 전적을 쌓아 올렸다. 드디어 2000년 2월 배틀탑 여자부대회에 출전, 3위에 입상했으며 3월 대회에서는 4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3월에 치러진 프로팀 드래프트에서 윤지현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연락도 채 받지 못했으며 뒤늦게 드래프트장에 찾아갔지만 대부분의 구단들이 여성게이머들의 외모만을 보고 선수를 선발,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났어요. 하지만 이런 수모를 겪으며 정말로 프로게이머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확고히 할 수 있었죠.』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던가. 윤지현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새롭게 프로팀을 창단하던 한게임·네이버팀이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매니저 역할을 겸할 사람으로 윤지현을 낙점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윤지현에게 남들보다 많은 나이가 도리어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프로게이머의 길에 들어선 윤지현은 지난해 9월 개막된 PKO세컨드스테이지에 네이버 소속으로 출전, 당당히 예선리그 1위에 올랐으며 자신을 낙점하지 않은 구단들이 보란듯이 지난달에는 최고의 여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노련미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전략구사과 뛰어난 상황판단 능력으로 여성 게임계의 정상에 확고한 자리를 만들었다.
『올해도 한게임팀의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게임이 좋아 프로게이머를 선택했듯이 게임산업의 발전에 한몫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사회의 편견에 당당히 맞서며 프로게이머 정상에 오른 윤지현이 올해 어떤 또다른 도전에 나설지 궁금하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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