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유통가인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가전양판점 라옥스의 한 귀퉁이에는 일본의 내로라 하는 브랜드의 평면TV들이 마치 화면분할방식의 멀티미디어 스크린을 틀어 놓은 것처럼 빽빽하게 전시돼 소비자들을 시선을 잡는다.
전시된 각각의 TV 밑 부분에는 판매가격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데 같은 크기의 평면TV 가운데 유독 소니 제품만이 다른 제품에 비해 5000엔에서 1만5000엔까지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TV판매 담당직원인 가시와키씨는 가격 차이를 「소니이기 때문에」란 한마디 말로 설명한다. 일본인들은 소니 제품이 다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소니는 항상 새로운 기술과 유행을 창조해 내는 전자회사라는 이미지를 지켜왔다. 이같은 소니(SONY)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조금 더 비싼 소니 제품」을 일본 소비자와 유통업체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가전업계에는 소니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가전업체 마쓰시타전기가 버티고 있다. 마쓰시타는 외형적인 매출 규모에서 소니를 크게 앞지른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전자업계 최대 이슈였던 VCR규격 싸움에서는 소니의 베타맥스방식을 따돌리고 자사의 VHS규격을 업계 표준으로 이끌어내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소니의 브랜드 인지도는 파나소닉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는 마쓰시타는 존재하는 콘셉트의 제품을 더 싸게 대량생산하는 마케팅 중심의 사업형태, 소니는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적인 사업형태를 지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지난 반세기동안 S O N Y라는 알파벳 4자에 강하게 집착해 온 소니인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소니의 자사 브랜드에 대한 애정은 지난 55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CI라는 용어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을 이끌고 있던 이부카 마사루씨와 모리타 아키오씨는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정확히 발음할 수 있고 외우기 좋은 상표가 필요하다며 SONY라는 상표를 만들었다.
SONY는 소닉(SONIC)과 사운드(SOUND)의 어원인 소너스(SONUS)와 귀엽다는 의미의 소니(SONNY)를 합성한 단어다. 당시 사장인 이부카는 이후 SONY라는 상표 알리기에 주력했고 특히 수출에 주력할 당시에도 미국 등지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들어 온 대량의 주문을 포기할 정도로 자사 브랜드를 아꼈다.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SONY라는 상표가 인지도를 높여갈 무렵인 58년에는 도쿄통신공업이라는 사명 자체를 소니주식회사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사명을 외국식 합성어로 고치고 상표명과 사명을 하나로 통일한 도쿄통신공업(소니)의 파격을 당시 일본 사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기」 「전자」 등 특정 사업의 의미가 포함되지 않은, 그리고 창업자의 이름을 딴 것도 아닌 사명의 상식파괴는 그후 국제화를 지향하는 소니에 큰 힘이 됐고 아시아권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CI의 한 사례가 되기도 했다.
소니는 S O N Y라는 4개 알파벳의 모양을 시대 변화에 따라 무려 5번이나 변화시킬 만큼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또 82년에는 로고에도 소리가 필요하다는 당시 모리타 아키오 사장의 제안으로 「It’s a SONY」라는 사운드로고를 입혔다. 우선 SONY로고를 보여주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들려주는 사운드로고는 그후 20년 가까이 TV CM에 일관되게 사용됐다.
소니는 특히 일본 기업으로는 최초로 61년 홍콩을 시작으로 세계 주요 도시의 최고 번화가에 옥외광고를 실시하는 등 세계에 자사 브랜드를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물론 지금의 소니가 이같은 SONY라는 브랜드에 대한 집착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브랜드에 걸맞은 제품을 개발하려는 노력들의 산물이다. 소니는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해냄으로써 브랜드를 알렸다. 신기술과 새 규격 창조에 끊임없이 도전해 세상 사람들이 처음 보는 상품을 만들어냈다. 이같은 노력이 계속해서 세계 최초라는 어드밴티지를 갖게 했고 그들이 자랑하는 「소니스타일」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 됐다.
소니는 세계 주요 브랜드 컨설팅업체들이 조사한 브랜드 가치평가에서 수년간 상위권에 링크돼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일본업체들 중에서는 항상 수위를 달리고 있으며 국내 주요 전자업체들에 비해 4배 이상의 브랜드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해인 46년 도쿄의 한 허름한 건물에서 출발한 소니는 50년대 조악한 제품의 대명사였던 「메이드 인 재팬」을 세계 최고 품질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21세기 세계인의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테슬라, 중국산 '뉴 모델 Y' 2분기 韓 출시…1200만원 가격 인상
-
2
'좁쌀보다 작은 통합 반도체'…TI, 극초소형 MCU 출시
-
3
필옵틱스, 유리기판 '싱귤레이션' 장비 1호기 출하
-
4
'전고체 시동' 엠플러스, LG엔솔에 패키징 장비 공급
-
5
헌재, 감사원장·검사 3명 탄핵 모두 기각..8명 전원 일치
-
6
모바일 주민등록증 전국 발급 개시…디지털 신분증 시대 도약
-
7
트럼프 취임 50일…가상자산 시총 1100조원 '증발'
-
8
금감원 강조한 '자본 질' 따져 보니…보험사 7곳 '미흡'
-
9
구형 갤럭시도 삼성 '개인비서' 쓴다…내달부터 원UI 7 정식 배포
-
10
공정위, 이통 3사 담합 과징금 1140억 부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