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과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벤처캐피털 역시 벤처위기론이 불거져나오면서 벤처기업과 마찬가지로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스닥시장이 무너지면서 투자회수가 위축되고 투자기업의 기업공개(IPO) 계획이 차질을 빚어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초기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신생 창투사들의 경우 자금이 고갈돼 인수합병(M &A)시장에 매물로 출현한 업체가 적지 않다.
현재 중기청에 등록된 창투사는 지난해 말 87개사에서 147개사로 대폭 늘어났다. 누적 투자금액도 지난해 1조4858억6900만원에서 지난 10월 말 현재 2조5630억5500만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하반기들어 벤처위기론이 고조, 벤처금융시장이 위축되면서 현재 거의 투자를 하지 않고 개점휴업상태인 벤처캐피털이 상당수에 달한다.
창투사의 급증은 벤처산업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사업계획서 하나만으로 수억∼수십억원에 이르는 돈을 모아 창업할 수 있게 됐으며 벤처기업들은 배수가 높은 쪽을 찾아 철새처럼 옮겨다녔다. 일부 벤처기업들은 사업에 몰두하기 보다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펀딩에 성공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고 벤처캐피털들은 이런 벤처기업들에 부하뇌동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같은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다. 대부분의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전문적인 심사능력보다는 펀딩에 대한 감각만을 익힌 타 금융기관 출신들이 대다수이며 일부 심사능력을 갖춘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아직까지 업계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벤처 이선재 사장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가장 큰 덕목은 투자기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라며 『투자기업과 동반자적인 관계속에 윈윈할 수 있는 투자가가 아직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부재는 시장의 급랭을 부채질했다. 벤처캐피털들은 거품이 걷히는 시장에서 제대로 된 벤처기업을 골라낼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투자중단」이라는 가장 단순한 방법을 택한 것. 때문에 벤처업계는 총체적인 자금난에 봉착했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굳는 법. 벤처구조조정과 위기고조로 벤처캐피털업계도 구조조정이 활발하다. 이에 따라 벤처 옥석구분의 틀이 잡히고 있으며 IPO 이후의 투자회수에만 치중, 단기투자에 주력했던 벤처캐피털들이 서서히 초기벤처에 눈을 돌리고 있다. 꽁꽁 얼어붙었던 투자도 이달들어 풀리고 있으며 벤처펀드 결성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묻지마 투자」 양상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나름대로의 투자기업 선정 노하우가 쌓이면서 옥과 석을 구분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부푼 꿈으로 시작, 위기로 막을 내린 새 천년 첫해의 쓴 경험이 이제 2001년을 앞두고 건전한 벤처캐피털산업 육성의 밑거름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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