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마다 전자정부가 새로운 화두다. 21세기 디지털혁명은 기존 정부도 송두리째 달라지게 만들 것으로 예측된다. 전자정부는 과연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또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시러큐스대의 스튜어트 도어슨 교수(국제문제연구원장), 김동욱 서울대 정보통신행정연구소장, 여현덕 에드퓨처 사장을 초청, 한종우 시러큐스대 교수의 사회로 전자정부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봤다.
◇장소 : 서울대 행정대학원 휴게실
◇일시 : 2000년 11월 29일
◇참석자
·스튜어트 도어슨 시러큐스대 국제문제연구원장
·김동욱 서울대 정보통신행정연구소장
·여현덕 에드퓨처 사장
·한종우 시러큐스대 교수
▲한종우(사회)=오늘 이 자리는 최근 세계에 불어닥친 정보기술(IT)혁명이 정치와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모색해보는 자리입니다. 먼저 IT혁명의 현주소에 대해 살펴볼까요.
▲여현덕=IT는 모든 직업과 정부에 걸쳐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기존 틀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충격을 주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김동욱=한국에선 인터넷 인구가 16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됐습니다. 이 덕분에 정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부는 IT를 적극 활용하려 하며 이제는 전자정부를 선언할 정도입니다. 구체적인 행동은 뒤따르고 있지 않습니다만,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에서의 IT활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
르렀다고 봅니다.
▲스튜어트 도어슨=최근의 IT혁명이 일으킨 변화는 정말 놀랄 만합니다. 특히 각국 정부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이러한 연결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종우=그 말은 국가간의 상호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뜻입니까.
▲도어슨=한국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제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른바 국제 연결망 정부입니다. 국제화는 독립적인 정부를 강화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한국의 경제위기와 같이 국제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IT혁명 자체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가져오지는 않았으나 그 전파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는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김동욱=IT혁명은 정부정책에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정부정책이 실패했을
때 시민단체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정책의 도출과 결정 과정에서 IT가 주요한 수단으로 떠오른 셈이죠. 솔직히 우리 전자정부는 실제 정부보다 오히려 나은 수준입니다. 전자정부를 본격화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한종우=시민사회쪽은 어떻습니까. 특히 교육문제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를테면 사이버대학 같이 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여현덕=IT시대에 시민사회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시민사회의 힘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IT혁명 시대에 맞는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디지털 커뮤니티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도 컬럼비아나 시러큐스와 같은 대학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교육을 위협할 정도입니다.
▲김동욱=사이버사회에 맞춰 시민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전통적인 정부가 국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장악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느슨한」 정부를 갖게 될 것이고, 여기에 적응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합니다.
▲도어슨=컴퓨터는 달이나 날이 아닌 시간으로 작동합니다. 사이버세상에서 시
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갑니다. 화살과 같이 흘러가는 시대에는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동욱=새로운 교육에 온라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를 통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유통방식에 대한 연구입니다.
▲여현덕=원거리 학습은 매우 극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만 오프라인 교육과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도어슨=교육이 본래 사회화 과정의 일부분임을 감안할 때, 오프라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사회화가 어린나이로부터 시작되는 직업사회 등의 다른 영역에서 충족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한종우=IT혁명으로 인해 기존의 정부역할이나 법 등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김동욱=지난 몇년 동안 인프라 구축에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는 리엔지니어링 하고 콘텐츠를 채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서로 네트워크망을 통해 정보를 나누고 교류를 갖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말고 주민과 함께 정보를 공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부의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일방적인 정부지시의 하달이 아니라 「인터액티브」하게 작용하는 게 필요합니다. 인터넷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여현덕=그렇습니다. 싱가포르를 보면 행정적인 측면과 비즈니스 측면이 잘 섞여 있어요. 펜실베이니아 일부 지역에서도 그렇고. e정부와 e비즈니스의 상호 커뮤니케이션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방법은 무엇이냐. 당장 뭐라 말할 수 없으나 행정분야별로 구체적인 연구와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김동욱=인터넷 상에서는 개인과 비즈니스가 잘 섞여 있어요. 정부도 이를 배워야지요. 정부는 그 인프라의 구축을 독려하고 필요할 경우 재정지원에도 앞장서야 합니다. e비즈니스에 앞선 한국의 전자업체들도 미국의 기업들처럼 정부에 방법과 내용을 알려주는 게 좋을 듯해요. 정부가 e비즈니스업체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거죠.
▲도어슨=노스캐롤라이나주의 IBM은 정부와 네트워크를 공유합니다. 정부의 현안을 함께 풀기도 하고 세금문제도 의논합니다. 문제는 정보공유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한종우=원형감옥이 있다고 가정하죠. 죄수들은 상호작용은 불가능하고 중앙의 간수가 모두 감시합니다. 이러한 감옥의 구조에서 죄수들은 규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와의 관계에 비추어 본다면 이런 형태야말로 「빅브러더」입니다. 빅브러더는 없을지 몰라도 「리틀 시스터」가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정보를 흘립니다.
문제는 IT의 발전과정에서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은행은 거래과정 및 결과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정부가 만일 이 모든 자료를 요구하면 어떻겠습니까. IT정부의 눈과 구속이 더 강력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법적인 문제도 심각합니다.
미국에서 개인이 선거자금으로 제공할 수 있는 한도는 5만달러입니다. 그런데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소년이 웹사이트를 구축해 그 이상의 선거자금을 모았습니다.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질텐데,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고민거리입니다.
▲김동욱=인터넷 기반의 사업, 선거 등은 매우 새로운 개념입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인터넷상의 정치활동, 경제활동 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테니 주목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인터넷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민간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너무 인터넷상의 문제들에 대해 낙관적인 편입니다만 네티즌 스스로 자정할 수 있고, 인터커뮤니티들이 자체 검열할 수 있습니다.
▲여현덕=그렇지만 인터넷은 자꾸만 우리 예상을 벗어납니다.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경계 구분이라는 것도 참 모호합니다.
▲김동욱=어느 경우에나 바운더리는 불분명하고 점차 사라지는 듯해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참여하고 있지요. 인터넷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죠.
▲도어슨=그렇지만 그들이 전화통화를 할 수는 없어요. 어쩌면 그들의 대화는 작은 소그룹안에 국한될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인터넷 사용자가 제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김동욱=저는 낙관적입니다. TV가 보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산비용이 줄어들어 컴퓨터와 인터넷의 사용이 더 보편화될 것입니다. 10년후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 모두는 세계의 인터넷 인구에 포함될 것입니다.
▲여현덕=전통적인 법과 방식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도대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세대라는 게 무엇입니까.
▲김동욱=우리가 상호소통하고 새 방법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날 것입니다. 새로운 생활방식이나 공통의식도 나타날 것입니다.
▲한종우=새 시대의 인간관계와 개인과 정부와의 관계야말로 새로운 인프라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자본(social capital)이 중요합니다. 각 사회가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자본을 구성할 것인가.
지난 총선때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보면 87년과 90년대 초반의 시민의 힘이 다시 돌아온 듯 합니다.
일본의 시민운동은 우리보다 더 강력하고 기법도 더 발달했습니다만 더 이상 먹혀들지 않습니다. 이미 일본은 다른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IT혁명이 가져다 주는 것이 나라와 사회마다 다른 것은 그 배경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IT혁명의 충격이라는 것은 기존, 혹은 건설해 나갈 사회적 역량과 상호작용하게 됩니다.
▲여현덕=디지털사회가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고는 하지만, 느린 부분도 있어요. 인간문제에 관한 부분들은 그렇죠. 휴머니티나 인간관계같은 부분은 아무리 디지털사회라해도 빨리 변하지 못해요. 그래서 디지털 요소와 인간 요소로 양분해 봤는데 이런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한종우=그러면 우리는 전자정부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요.
▲김동욱=기존의 수직적이고 단방향적 국민과 정부간의 관계가 이제는 상호 연결이 중시되는 수평적 관계로 바뀔 것입니다.기존의 폐쇄적인 행정환경과 문화에서 개방된 형태로 이행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정부의 정보화를 추진해야 합니다. 단지 행정문화뿐 아니라 기업이나 사회전체의 문화바탕도 변해야 한다. 기업들도 수직적인 결합보다는 같은 업종간의 교류가 더욱 생산적입니다. 대학도 그렇고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테면 보건복지부는 재경부나 과기부와 함께 수평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생산적인데 보건복지부 안에서만 일을 수행하려 듭니다.
분산 환경에 접어들었는데 정부정책은 여전히 중앙집중화돼 있습니다. 글로벌 사회에서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교육도 필요합니다. 다른 업종끼리의 함께 일을 하면 이중투자도 없어지고 양방향 조정과 대화가 가능합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나 사회도 이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종우=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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