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e코리아]사이버시대 빛과 그림자

인터넷과 정보기술에 의해 창조된 사이버 세상은 우리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이제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안방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다. 의식주 해결은 물론이고 국내는 물론 해외 비즈니스까지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되는 「e코리아」 시대가 열리면 이같은 사이버세상은 더욱 활짝 열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이버세상이 인류에게 엄청난 유익과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양산,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지난해 터진 O양 비디오 사건과 올해 B양 비디오 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

네티즌들은 이 비디오 파일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밤새 웹서핑에 열을 올렸으며 인터넷 게시판은 온통 B양 얘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상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커 저녁 술자리에선 최고의 안주거리였다.

당시 이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다. 한편에선 B양에 대한 도덕적 지탄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또 한편에선 별다른 죄의식없이 이 파일을 유포시키는 우리 사회의 집단 관음증을 비판하기도 했다. B양 비디오파일이 컴퓨터 바이러스보다 더빨리 확산됐다며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 사건이라는 평가도 있었고 첨단 암호체계가 하루 만에 풀렸다는 언론보도에 암호 해독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은 우리 사이버 문화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전형적인 사건이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가져온 일상적인 편리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도서관을 일일이 찾아다니거나 신문을 뒤져보지 않아도 언제든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e메일이나 채팅을 이용하면 전세계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비단 이런 편리함뿐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평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표출할 수 있고 또 제한없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시민들의 토론과 공론의 장으로, 나아가 전자민주주의의 기반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등 인터넷이 가져다준 편리함이라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간의 인터넷 문화는 애초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올바른 디지털 문화나 윤리의 부재로 인해 점차 엽기적으로 변질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이버문화연구실의 나도삼 박사는 『B양 비디오 사건은 우리 인터넷 문화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PC방 등 상업적 인터넷의 발전과 콘텐츠 부재, 상업적 경쟁 심화 등으로 엽기적 문화가 형성되고 있어 인터넷 문화 전반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고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터넷 문화에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인터넷에 올리기만 하면 바로 여론 재판으로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사실에 대한 명확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는 것이다. 민경배 실장은 『올해 우리의 인터넷 문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는데 네티즌들 사이에서 자율적인 규범 및 질서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어 희망의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인터넷 문화가 조금씩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타율적인 통제나 캠페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이런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오마이뉴스 등의 대안 언론의 출현과 소비자 운동 등 현실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많은 시민 운동이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등 몇가지 긍정적인 변화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소비자 단체에만 의존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이해당사자 스스로가 온라인을 이용,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몇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네티즌들의 자율성에 기대기만 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인터넷 문화를 올바르게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 실장은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현재 초중고에선 컴퓨터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실용적·활용적 측면에만 치중돼 있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 사용이나 인터넷 접속은 굳이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기술이다. 따라서 이런 기술 교육보다는 오히려 인터넷마인드나 디지털마인드를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직접 커뮤니티 사이트를 개설, 시솝으로 이를 운영하면서 문제를 스스로 경험하게 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거나 게시판을 통해 학급 구성원들이 한가지 주제를 놓고 찬반 토론을 하게 하는 식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 생활을 훈련된 교사의 지도하에 배우고 체험해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디지털 윤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하며 이러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인진기자 ij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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