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과학적 상상력의 위력

이문호 저 「문」

사람이 태어나서 수없이 많이 접해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문(門)이다. 집마다에는 대문이 있고 그 안에는 방문과 창문이 있으며 각방에 들어가면 장롱문이니 서랍문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 사무실에도 역시 많은 문이 있으며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캐비닛문이니 금고문이니 하는 것들이 있을 터이다.

물론 그렇다고 외형적으로 문처럼 생긴 것만 문이 아니다. 예컨대 김포공항은 한국의 관문이며 경상도에 있는 문경새재는 영남의 관문으로 통한다. 산속의 절을 두고 산문(山門)이라고 하는 것도 속세와 구도세계를 나누는 들고 나감이라는 문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못들어가고를 따지게 되는 등용문도 있다. 사람 사이에도 마음에 문을 열었느니 닫았느니 하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남녀의 성 심벌 역시 문의 개념이다. 문의 의미가 어디 그뿐인가. 한글은 글의 문이요, 0과 1은 디지털의 문인 것이다.

필자는 몇년전 시공을 초월한 문에 대한 이야기가 없을까 하고 도서관과 서점을 찾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을 잊어버릴 만한 때쯤해서 전북대의 이문호 교수가 책을 한권 보내주었다. 전기통신공학을 전공한 그는 예전에 김영사에서 출간한 「뿌리찾는 정보통신이야기」에서 과학자의 과학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책인가 했더니 바로 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책 「문」의 첫장을 넘기기도 전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표지에 「성(性) 심벌로 풀어보는 디지털 포털의 문이야기」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우선 그는 문의 다양한 의미나 현상이야기를 넘어 문을 소재로 한 과학적 상상력과 우리 문화에 대한 주체적 역사의식을 결합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벌여왔음을 이 책을 통해 알리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상상력은 지난 1000년내 인류 최고의 패션발명품으로 지퍼를 꼽은 뉴욕타임스의 기사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지퍼는 숫돌쩌귀(凸)와 암돌쩌귀(凹)가 합쳐지기도 하고 헤쳐지기도 하여 문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갖고 있다. 모든 동식물에는 암수가 있고 그 상징물은 수컷이 ♂, 즉 1이고 암컷이 ♀, 즉 0이 된다. 그런데 지퍼는 빠르고 열정적인 섹스를 암시하며 섹스는 태초부터 있어왔다. 그렇다면 인류가 찾은 가장 위대한 기술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문의 원리가 되는 디지털(1과 0)의 기술이다. 그러니까 디지털 뿌리의 원초는 성의 문화라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과학적 추리력이다.

문에 대한 그의 상상력은 계속된다. 지금은 터와 쌍탑만 남은 월성 감은사 기단의 태극무늬에서 음양·사상·8괘의 문을 발견한 그는 이어서 부안 내소사의 화려하지만 청아하기 그지없는 대웅전 꽃살문 속에서 세속의 욕망은 간데없이 흩어지고 마는 해탈의 문을 본다.

그의 과학자적 상상력은 제주 민가의 전통문인 정낭에서 절정을 이룬다. 3∼4개의 통나무(정주목)를 통해 집안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외부에 알렸던 정낭에서 「예스(yes)」와 「노(no)」 혹은 「온(on)」과 「오프(off)」 원리를 발견한 그는 마침내 이것이 최초의 디지털정지 무선통신 시스템이었음을 알린다. 또 오늘날 전세계 60억인구가 출퇴근 때마다 보고 가는 3색 교통신호등의 원리가 됐음도 입증해 준다.

앞서 얘기했거니와 문에 대한 이문호식 상상력은 무한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상상력은 「뿌리찾는 정보통신이야기」 때부터 언제나 독자로 하여금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문호 교수의 과학적 상상력은 바로 그 자체가 문인 것이다(아! 바로 그제서야 필자는 이문호 교수의 이름 가운데 자가 한자로 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논설위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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