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위성방송에 대한 小考

◆모인 문화산업부장

P형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띄웁니다. 현지 방송을 통해 한국 소식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최근의 이 곳 화두는 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또다시 제2의 환란을 겪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소비심리와 생산활동은 이미 IMF 수준이라고 이쪽 저쪽에서 야단입니다. 반도체를 위시한 전자산업이 수출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P형도 아시겠지만 지난 19일에는 방송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다채널·다매체 시대를 열어갈 위성사업자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예상대로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와 한국통신 등 160개 업체가 참여한 KDB컨소시엄이 차지했습니다. 앞으로 이 컨소시엄은 법인 설립절차를 마치는 대로 내년 7월 시험방송에 들어가 10월부터는 본방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내년 하반기께면 선명하고 인터액티브한 위성방송을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당장에 내년이면 74개 채널이 운영되고 2005년이면 모두 114개의 채널이 운영된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영화·스포츠 등 전문채널을 골라 시청할 수 있고 주문을 통한 나만의 영상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데이터 채널을 통해 인터넷검색과 e메일·홈뱅킹·전자상거래 등 통신서비스도 제공된다고 합니다. 정말 꿈에 그리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P형. 그러나 달콤한 향연 앞에서 걱정이 앞서는 이유가 왜일까요. 아마도 이같은 위성방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약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여된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투자금액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경제사정도 넉넉지 않은데 턱없는 사치를 부리고 있지 않나 덜컥 겁도 납니다.

그많은 채널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도 걱정거리입니다. 심사위원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일정 몫을 담당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지만 그들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경쟁매체가 될 위성방송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얼마만큼 역량을 발휘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번에 사업권을 획득한 KDB의 지분율을 보면 결코 아닌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KDB의 자료에 따르면 KBS를 비롯한 MBC·SBS 등 3사의 지분은 약 19.2%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전주방송을 소유하고 있는 일진의 지분 6%와 기독교방송·광주방송 등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지상파 방송 소유의 위송방송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KBS·MBC 등이 공영방송인데 문제될 게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방송의 독립성 문제를 거론하는 것 같은 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지상파 방송사의 우산 아래서 위성방송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설명도 될 법합니다.

왜냐하면 위성방송은 지상파 방송의 시청자를 어떻게든 자기쪽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숙명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과연 제살을 깎아 내면서까지 경쟁매체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가정인데 만약에라도 지상파방송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위송방송을 실시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P형. 십수년전 컬러TV시대 개막을 알릴 즈음 국민소득에 걸맞지 않은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비난의 소리가 있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나올 법한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컬러TV시대의 개막은 지역간·계층간의 갈등을 일거에 해소하는 사회적 성과를 거뒀습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컬러TV를 최대 수출상품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고 그 결과는 반도체산업으로 연결됐습니다.

수출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통상마찰을 일으켰던 미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컬러TV산업이 오늘날의 반도체산업을 일군 1등 공신이 아닙니까.

P형. 정부자료에 따르면 위성방송 실현으로 2005년까지 모두 30조원의 시장 창출효과와 6만여명의 고용창출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콘텐츠산업과 디지털 방송·장비산업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도약의 나래를 펼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러나 굳이 이같은 근거를 찾지 않더라도 위성방송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미래의 방송산업과 국민적 혈세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패한 케이블TV 방송의 전철을 절대로 밟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신경제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라도 위성방송은 반드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P형. 그런데 방송산업 안팎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특히 특정방송의 위성방송 집착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려의 시각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과의 경영문제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독립프로덕션들의 지원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P형. 오랜만에 띄운 편지가 장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위성방송이 위기의 경제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전기가 되도록 그 곳에서 많은 성원 바랍니다.

P형.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