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Ⅲ-도전 21 벤처기업>치열한 벤처정신, 그것만이 희망이다

벼랑끝까지 내몰린 한국 벤처산업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안겨다줄 2001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에는 닷컴거품론에 이어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 등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벤처위기론」이 고조됐지만 누가 뭐래도 벤처는 금세기 한국경제의 최고 희망이다. 이에 따라 위기속에서도 「벤처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이는 기존의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로는 「OECD국가」로서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IMF 경제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믿을 건 벤처밖에 없다」는 짤막한 진리를 절감했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성장률이 일반기업을 월등히 앞서고 있으며 고용창출 등 부수적인 경제효과도 높다는 것은 이미 각종 통계로 증명됐다. 다만 지금의 위기는 벤처산업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고 한단계 더 뛰어오르기 위해 한번쯤 겪는 「홍역」일 뿐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벤처를 반드시 되살려야 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전반적으로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실제로 지난해초까지만 해도 IMF 경제위기를 다 극복한 것처럼 과대포장됐던 우리 경제는 최근 IMF와 유사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벤처붐 조성으로 줄어들었던 실업난과 취업난이 다시 심화돼 실업자수가 이미 100만명을 돌파한 지 오래며 취업난으로 휴학계를 낸 대학생이 30%를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고 하지만 4·4분기 이후 경기부진 추세가 뚜렷하다. 거시적 경기전망 지표인 경기실사지수(BSI)가 IMF 이후 최저치를 잇따라 갱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가·환율·금리 등 3고가 언제 재연될지 모르며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등으로 노·사·정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충분한 외환을 보유, 「IMF는 다시 없다」며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마치 IMF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는 벤처산업의 재도약을 통한 분위기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벤처의 재도약만이 경제불안을 해소, 우리 경제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겐 벤처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어떤 다른 민족보다도 투철한 기업가 정신이 존재한다. 이는 수천년간의 외세침략을 견디면서 대대손손 자연스럽게 축적된 인내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는 강인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민족은 특히 위기에서 더 잘 뭉치는 습성이 있다. 이는 IMF때에도 그대로 증명됐다. 여기에 한민족 특유의 도전정신·창의력·근면성이 뒤를 받쳐준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한국인의 기업가 정신은 중국·미국보다도 높으며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이같은 투철한 초기 기업가 정신이 빨리 퇴색한다는 점. 때문에 기업가 정신, 즉 벤처 정신이 쉽게 퇴색되지 않도록 모두가 정신을 재무장함으로써 다시 한번 벤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또 「열풍이 잘 이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의 고질적인 「냄비근성」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 해석하면 쉽게 「붐업」과 분위기 조성이 가능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스피드와 분위기가 특히 강조되는 벤처비즈니스에 잘 맞는다. 실제로 지난해 벤처붐 조성과정에서 우리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벤처를 도입한 국가로 평가받았다. 이는 경제대국 일본도 인정하는 부분으로 최근엔 우리나라를 벤처마킹하느라 정신이 없다.

첨단 IT산업의 저변이 넓은 것도 한국의 벤처산업이 충분히 재도약, 벤처강국으로 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000만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떠오르는 무선인터넷의 잠재시장인 이동전화 이용자도 이미 3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디지털 가전, 반도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등 월드베스트 IT업종이 뒤를 탄탄히 받쳐준다.

높은 교육수준에 따른 양질의 노동력과 오랜 제조산업을 통한 생산기술력이 뛰어난 것도 우리나라가 벤처강국을 실현하는 데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벤처붐을 형성하면서 벤처캐피털·엔젤·벤처인큐베이팅·창업보육센터·코스닥 등 벤처육성에 필수불가결한 인프라산업이 자리를 잡았다.

다만 이제 버릴 것은 확실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전국민적으로 확산된 모럴해저드 현상을 비롯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대박 지상주의」 △사후약방문격 벤처정책 △대기업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대마불패」 의식 △기업의 진입 및 퇴출 제한 등 벤처강국으로 가는 데 걸림돌들은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특히 「벤처입국」이라는 전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장애물인 불신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 필요하다. 벤처는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필수적인 매개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세계에서 벤처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 21세기 벤처강국의 건설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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