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가 디지털전략을 다시 짜자

김경묵 인터넷부장

다시 일본을 배울 때가 된 것 같다.

난데 없이 구악의 유산처럼 여겨지는 「일본 배우기」를 들먹인 것은 우리나라에 인터넷에 대한 국가전략이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시장논리가 중시되는 요즘에 국가전략을 운운하면 시대착오적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인터넷과 같은 통신인프라에 국가차원의 전략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따라하기」는 우리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재벌그룹이 앞장선 일본 닮기는 우리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엔 일본을 얼마나 빨리 닮을 수 있는가의 여부가 사업성공의 관건이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 성공한 제품이나 사업은 국내에서도 1∼3년의 시차를 두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식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정보화의 닻을 올린 80년대까지 계속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영원한 2등이었고 일본을 따라잡기는 요원해 보였다.

인터넷시대의 개막은 수십년간 공식처럼 여겨져온 이 등식을 깨트렸다. 장기불황에 허덕여온 탓인지 몰라도 일본은 분명 인터넷에 대한 대응면에서 우리보다 처져보였다. 이에 걸맞게 세계여론은 인터넷신흥강국으로 우리나라를 추켜세웠다. 모처럼 우리가 일본을 제치고 국제사회에서 주연역할을 해본 셈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연역할이 리허설에 그쳤다는 데 있다. 정작 본 무대에선 또 다시 주연자리를 일본에 양보해야 할 처지에 와 있다. 인터넷의 맛보기로 시작된 유선인터넷은 이제 주인공의 자리를 무선(모바일)인터넷에 넘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우리나라 인터넷 육성 정책방향은 미국의 모델을 따라 유선 인터넷에 집중돼 왔다. 비즈니스 모델 역시 미국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힘든 빈약한 비즈니스 모델로 인한 시장난립과 캐피털들의 머니게임 등의 산업성장에 따른 어두운 이면들도 고스란히 전수됐다.

결국 유망한 인터넷 서비스기업들까지 쓰레기 취급받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인터넷 관련 솔루션·장비 시장도 위축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던 인프라 구축업체들의 사정은 더 심하다. 국내인터넷 활성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초고속망 업체들은 최근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대그룹사 소속이 대부분인 이들 초고속망 업체들의 그룹내 처지는 한마디로 「미운오리 새끼」다. 잠시나마 만천하에 우리나라를 인터넷강국으로 인식시킨 것은 상당부분 이들업체들의 희생덕분이다. 그에 비하면 현재의 상황은 너무 가혹한 결과다. 분명 유망한 인터넷업체들을 다 죽이고 정부를 대신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초고속망 업체들을 고사시키는 것이 국가전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문인지 자꾸 시장선점에 눈이 멀었던 업체들의 근시안을 탓하기 앞서 국가적 전략부재를 지적하고 싶은지 모르겠

다.

잠시 눈을 돌려 일본을 보자. 일본의 인터넷을 얘기할 때 NTT도코모를 빼놓을 수 없다. 이 회사는 무선인터넷 접속서비스 i모드로 모바일 인터넷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또 최근엔 세계시장 석권을 목표로 i모드 글로벌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i모드 성공의 이면엔 미국의 세계 지배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일본이 미국이 주도하는 유선인터넷을 고가로 두면서 NTT도코모를 통해 무선인터넷을 저가에 보급한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무선인터넷 강국 진입에 성공한 일본이 이제 유선인터넷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미국을 답습한 우리나라의 시행착오를 충분히 검토한 후다. 유선인터넷 분야에서도 우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조기에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 깔려있는 듯 하다. 일본이 이처럼 무선에서 유선으로 통합과정을 거쳐 경쟁력확보에 나서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유선에서 무선으로 진입하는 역과정을 밟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이번엔 우리도 보고 배울 게 있다 .일본에 한국시장은 유선 인터넷 사업모델을 검증하는 좋은 시험대가 됐다면 일본도 무선분야에서 우리의 검증모델이 돼야 한다.

이제 막 불붙은 무선인터넷 시장은 모바일 환경추세에 힘입어 급신장할 것이 분명하다. 국내 무선인터넷 시장 인구만 봐도 11월말 현재 1500만명으로 올초와 비교하면 약 500%에 이르는 폭발적인 증가세다. 또한 무선인터넷 기반에 해당하는 이동전화가입자도 2650만명에 달해 인터넷이용자 1600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특히 유선인터넷과는 달리 사용료를 기반으로 콘텐츠의 유료화가 가능해 새로운 수익모델로서의 자리매김도 가능하다.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무선 인터넷시장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경우 우리나라의 무선인터넷 산업은 유선분야에 이어 세계 시장 선도가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여기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은 제갈공명과도 같은 정부의 지혜로운 정책이다. 업체들 나름대로 대응을 하고 있지만 결국 세계 시장에서 살아 남는 방안의 첫 단추는 정책을 움직이는 정부가 끼워주어야 한다. 또다시 업체들의 희생을 대가로 얻어지는 무선인터넷 강국이 돼서는 안된다. 진정 싱가포르나 일본처럼 「모바일 e정부」를 구축한다는 각오로 무선인터넷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

이런 노력없이는 향후 무선시장의 격전장이 될 IMT2000이나 차세대인터넷(인터넷2)시장에서도 영원한 조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각각의 표준과 애플리케이션, 콘텐츠, 서비스시장 그 어디에도 우리의 주연자리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