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무엇을 수출할 것인가

양승욱 생활전자부장 swyang@etnews.co.kr

전자상가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연중 최대 대목인 연말연시 특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상가 문을 닫고 떠나는 상인들도 하나 둘 늘고 있으며 상가마다에는 연쇄도산의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메이커들은 상반기에 비해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3년전 IMF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밟고 있다.

최근 「수출만이 살길이다」는 구호가 다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국내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난국을 헤쳐나갈 길은 수출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내년 우리 경제의 회생돌파구를 수출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전자·정보통신산업에 대해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올해 우리나라 총수출 예상액은 1740억달러. 이 중 전자·정보통신산업은 670억달러를 수출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는 255억달러에 달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에 의해 우리나라 경제가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정보통신산업의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이같은 우리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듯하다. 반도체 가격은 PC수요의 급감으로 폭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새로운 수출 유망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PC와 휴대폰도 보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서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급증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희망대로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조건적으로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외침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수출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될 듯싶다.

우리는 지난 2∼3년간 IMF라는 고통의 세월을 겪으면서 무조건 수출만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껴왔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모두 수출에 나서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죽기살기식으로 수출확대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같은 사활을 건 수출확대 전략은 우리 기업들간의 치열한 수출 가격 인하 경쟁을 유발했고 이는 결국 국내 기업 모두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졌다. 또 해외 바이어들도 국내 상황을 이용해 지속적인 공급가격 인하를 요구해왔다. 당시 수출단가 인하에 경쟁적으로 나섰던 업체들이 아직까지도 채산성 맞추기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무리한 수출 드라이브 전략에서 빚어진 당연한 결과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시 수출 드라이브 전략에 나서야 하는 지금,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 모두 세계 시장에서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무엇을 수출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따져보고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최첨단 기술분야에서 일본이나 미국 기업과 경쟁하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또 이들 선진국 기업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앞서거나 그렇다고 세계 시장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마케팅 전문가도 거의 없다. 인건비는 비싸 중국이나 대만, 동남아 지역의 개발도상국에 비해서는 생산원가가 높아 가격경쟁을 하기도 어렵다.

또 우리가 한 발 앞서있다고 자부하는 디지털TV 등을 수출주력상품으로 육성하기에는 아직 수요가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은 중국이나 대만 등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을 갖춘 양산제품, 선진국들이 아직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있는 틈새상품이나 아이디어 상품이다.

비록 가격이 떨어지고 있으나 반도체는 미국이나 대만에 비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국산 디지털 세트톱박스와 DVD플레이어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남이 아직 흉내내지 못하는 우리만의 지식과 노하우를 가미한 MP3플레이어 등도 당장 우리가 제값을 받고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상품들이다. 또 영화나 콘텐츠 등 문화상품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수출상품이다.

지금 당장 국내 경기가 위축돼 어렵다고 해서 그 대안으로 과거와 같이 경쟁력없는 상품을 밀어내기식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고답적인 발상은 버려야 한다. 비록 물량은 많지 않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수출 기반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들을 발굴, 이를 수출산업화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수출전략을 마련, 시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