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20회-선택과 집중

최근 산업자원부는 올해 3·4분기까지 부품·소재·기계류 분야에서 73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 이 분야에서 3년 연속 100억달러대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등 첨단분야는 물론 반도체·휴대전화 등의 수출증가세 지속에 힘입은 것이라면서 특히 반도체·인쇄회로기판(PCB)·콘덴서 등의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4% 증가했으며 액정모듈 및 휴대전화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5% 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전자부품업계 현실이 이렇듯 장밋빛 일색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자부품 산업은 휴대전화 등 고부가가치 핵심부품의 수입의존도가 높고 선진국에 비해 핵심기술 취약에 의한 제품구조 고도화 미흡, 지나친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다 무엇보다 반도체·LCD 등 특정품목에 편중돼 있는 산업의 구조적 불균형성이 가장 우려할 만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특정품목에 의존하고 있는 현 구조는 분명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최근의 D램 가격 하락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 산업의 위축이 관련업체는 물론 국가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는 사태로 확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광부품업체인 H사 K사장은 『국내 전자부품 산업은 사람으로 치면 극도의 편식을 하는 사람』이라면서 『기본영양소의 섭취마저 포기하고 당장 입맞에 맞는 음식만 먹어대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비유한다.

그는 『한 예로 최근 들어 광관련 부문 전망이 밝다니까 업체들이 부지기수로 뛰어들고 있다. 기술내용보다는 당장의 수익을 찾아 업체들이 몰려다니는 느낌』이라며 『이는 원천기술의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바야흐로 세계 전자부품 시장은 극심한 변동기로 접어들고 있다. 디지털 부품 위주로 구조변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부품관련 세계표준 정착, 세트업체의 부품 구매처 글로벌화, 기기의 소형화·고기능화에 따른 기술의 융합 및 부품의 복합 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저가 부품과 일본의 고품질 전자부품이 세계시장을 잠식해가는 형태로 변화되고 있어 국내 부품산업의 획기적인 체질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우선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은 스스로 부가가치가 큰 분야에 대한 핵심기술을 확보해 세계적 경쟁력을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국내 전자부품업계는 범용 저부가 제품 위주로 구성돼 있어 구조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다 원천기술력이 부족해 첨단부품의 개발에서도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일본 무라타 등 세계적인 전자부품업체들은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유망부품에 꾸준히 투자하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핵심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글로벌 기술개발, 생산 및 영업체제 구축도 전자부품업계의 주요 경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전문화·특성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가격·품질·디자인·납기 등 종합적인 경쟁우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또 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한 원천·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소재·설계·공정장비·생산기술을 동시에 갖추는 체계적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국내 전자부품·소재 업계에도 요구되고 있으나 우리 실정은 아직 이런 흐름에서 다소 멀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서서히 고부가가치 부품 중심의 품목구조로 변화되고 있으나 첨단 핵심부품 분야의 기술수준은 아직 높지 않다.

국내에는 3100여개의 전자부품 소재관련 회사가 있으며 삼성전기·LG이노텍 등이 대표적인 종합 부품업체로 불리긴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비록 차별화는 필요하겠지만 압전·유전재료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창업 초기부터 부품사업만을 해온 무라타와 함께 자성재료를 기반으로 철저한 기술중시 경영을 펼치는 TDK 등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수한 전자기기는 양질의 전자부품으로부터 만들어지며 좋은 재료가 그러한 부품을 만든다는 세계 최고 부품업체인 일본 무라타의 경영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설명이다.

또 국내에서는 알루미늄 전해콘덴서 부문에서 독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삼영전자공업이 성공사례로 꼽힐 만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지원정책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자산업이 우리나라 주력산업으로 확실하게 정착된 현 시점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세계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후보기업을 선정,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집중 지원함으로써 세계 최고·초일류 부품업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국내 전자부품산업 수준을 혁신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우리나라가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와 잠재력이 큰 분야 등에 대한 선별적인 전략, 즉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전자부품 산업이 양적으로 세계 3위인 점을 감안하면 이제 질적 수준에서 도약하기 위한 계기가 마련돼도 결코 이른 시점은 아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손도식 한국전자부품연구원 책임연구원 sonds@nuri.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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