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중·일 경제협력틀 만들기

윤원창 부국장대우 경제과학부장 wcyoon@etnews.co.kr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함께 묶어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협력체를 만들어 보자는 야심적인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주 말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 협력체 구성을 제의했고 이러한 제의가 받아들여져 내년부터 동아시아 연구그룹을 중심으로 검토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에 앞서 이루어진 한·중·일 3국 정상회동에서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무역·투자 문제와 한·일 정보기술(IT) 협력 이니셔티브를 중국으로 확대하는 문제 등을 내년 1월부터 공동 연구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동북아시아 3국간 경제협력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보자는 의도로 큰 의미가 있다.

김 대통령은 동아시아 경제협력체 구성을 제안하면서 21세기에는 세계화와 지역주의가 동시에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진행중이다. 세계화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어 자본과 상품에 대한 국경을 낮추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블록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WTO에 따르면 지역무역협정은 200개 가까이 되며 실제로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협정만 119개에 달한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지역경제협정에 가입한 셈이다. 또 135개 WTO가맹국 중 지역경제블록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회원국은 한국과 일본, 홍콩뿐이다. 만일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여기에 추가된다. 세계 통합의 큰 흐름 속에서도 지역경제 분할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동북아 지역에서의 경제통합 논의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지역 국가간 경제협력은 유럽·남미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볼 때 일천한 수준이다. 각국 경제상황의 차이가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잘못된 과거 역사의 상흔(傷痕)이 큰 작용을 했다. 그러나 지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그 전염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동북아 3국이 지역경제협력에 대해 좀더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이 분명하다. 김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제의한 아시아 금융위기방지 방안들도 이 지역 경제협력을 위한 디딤돌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3국 정상회동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한·중·일 등 동북아 3국 경제협력의 단기 목표는 동아시아 경제협력체 구상에 앞서 동북아 3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벌써 무르익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한일간에는 투자협정이 정부차원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한일간 FTA 협상도 정부차원은 아니지만 양국 국책연구소간·민간단체 논의가 이뤄져 양쪽이 어느 정도 조율되면 정부간 협상으로 승격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측은 한일간 FTA를 체결해 양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해 나갈 것을 지속적으로 제의해 오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한일간 FTA를 연구하는 단계이며 협정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다시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몇 년 사이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한일이 밀착되려는 시점에서 한일 FTA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에게 민감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대일의존도가 높은 전자·정보통신업계에는 더욱 그렇다.

FTA 체결이나 상위의 개념인 경제협력체 구성을 하자는 것은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없애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무역거래 면에서 국경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입선다변화 해제 후 일본산 전자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왔음을 생각할 때 일본보다도 무려 2.5배가 높은 우리 관세장벽이 없어진다면 일본제품 유입은 엄청날 것이고 그 결과 대일 무역적자가 더욱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협정이라도 무역 불균형관계를 더욱 심화시킬 땐 의미가 퇴색된다.

한·중·일간 어떠한 형태의 경제협력 논의이든 논의 그 자체는 바람직하므로 이를 지속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 전세계 화교경제권을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세계 3위권 경제국인 중국과 연대한다면 명실상부한 거대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이를 지렛대 삼아 유럽·미국 등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북아 경제협력, 특히 한일간 협력은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 일부터 이뤄져야한다. 자본협력이나 기술협력도 결국은 이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김 대통령이 제시한 구상들이 그 외양의 화려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에 실질적이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국제무대에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