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국내 가전유통시장에는 전자제품 유통구조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형 할인점인 이마트가 유통업계 최초로 주요 가전업체들의 전유물이던 TV를 자체브랜드로 개발해 판매에 나선 것이다. 시네마플러스라는 상표로 시장에 선보인 이 제품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면서 급속한 판매신장세를 이어갔고 이를 지켜보는 가전업체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마트는 시네마플러스 출시 이전에 이미 중소가전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소형가전제품을 자체브랜드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체상표 TV 출시가 이슈화된 것은 유통업체 브랜드가 생활용품, 소형가전 등에 이어 주요 가전업체들이 생산하는 일반 가전제품으로 확대되면서 가전시장이 본격적으로 유통업계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전환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마트는 TV 출시에 이어 냉장고 등 다양한 대형 제품에도 플러스시리즈 자체상표를 부착해 독자적인 가전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슈가 되고 있는 이마트의 유통점 자체브랜드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가전양판점·대형전자상가·할인점 등 대부분의 대형 유통점들은 지금까지 가전업체들로부터 기획모델 형태로, 대리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모델을 비교적 싼 가격에 공급받아 왔다.
특히 이들 기획모델은 주요 유통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더욱 다양해졌다. 특히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 이후 외국 가전제품의 국내 유입이 크게 늘면서 상대적으로 가전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기획모델의 가격적인 메리트는 한층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전업체들이 대형유통점에 기획모델을 공급하기 시작한 배경은 물론 기존 자사 대리점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다. 대리점들에 비해 수백배 많은 물량을 소화하는 대형유통점들은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가전업체로서는 대리점과 대형유통점에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한다고 해도 양판점 가격이 더 싸게 형성되는 현상을 막을 길이 없다. 결국 대리점들의 불만은 증폭될 수밖에 없어 이를 피해가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당초 모델에서 일부 기능이 빠지거나 추가된 형태를 띤 기획모델인 것이다.
따라서 임시방편 성격이 강한 기획모델의 증가는 가전유통업계의 시장주도권 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통업체들이 주도하는 상품이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은 매우 넓어지고 있다.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가전유통업체들의 힘이 더욱 커지면 국내외 가전업체들은 사실상 유통가격 통제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유통업체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유통업체도 폭리를 취할 수 없게 돼 결국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소비자들은 유통업체를 비교하면서 구매하는 과정에서 가격뿐 아니라 서비스까지도 확인하게 된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AS 품질에 대해서도 깊이 관여하게 돼 전반적으로 소비자들의 권익이 향상될 수 있다.
또 유통업체들은 소비자에 대한 제조업체의 횡포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일례로 하이마트는 요즘 국내 최대 카메라생산업체의 제품을 외국에서 역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일단 국내에서 생산, 외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국내로 반입된 제품은 이상하게도 국내에서 직접 판매되는 제품보다 가격이 싸다.
따라서 같은 제품이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비싼 가격에, 외국 소비자들에게는 싼 가격에 공급됐다는 추론이 가능한 데 유통업체들이 힘을 갖게 되면 유통업체들의 입김에 의해 이같은 문제들이 개선되고 사라질 수 있다.
제조업체들에 의한 가격통제가 아닌 자율경쟁을 통한 유통시장 가격 확립은 소비자들의 권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제조업체들은 더 좋은 제품을 유통업체들에 공급하고, 유통업체들은 더욱 경쟁력있는 제품을 도입해 좋은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유통구조는 소비자만족도 향상에 꼭 필요한 형태다.
국내시장에 대한 외국 가전업계의 대대적인 공세는 「국내 가전시장 잠식」이라는 부정적인 영향뿐 아니라 「유통구조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영향도 함께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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