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벤처, 새틀을 만들자>(6)선순환의 고리를 잇자

투자기업이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중소 벤처캐피털 I사는 최근 100억여원에 달하는 장단기 부채를 모두 갚았다. 금융시장 경색과 코스닥 침체가 지속돼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I사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유자금을 모두 부채상환에 쏟아부은 탓에 최근에는 투자할 자금이 없어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코스닥 침체로 주식상장(IPO)에 의한 투자회수가 뜻대로 되지 않는데다 민간자금시장의 위축으로 벤처펀드 결성 길도 막혀 일손을 놓은 벤처캐피털이 적지않다. IMF 이후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해 코스닥 활황으로 운좋게 대박을 터뜨린 벤처캐피털이 이제는 코스닥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중기청이 펀드결성 총액의 40%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민간부문이 위축돼 이마저도 「그림의 떡」인 곳이 많다.

올초에 투자기업의 주식을 마구잡이로 파는 등 발빠르게 투자회수에 나선 선발 벤처캐피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생 벤처캐피털들은 더욱 절박하다. 무리하게 투자를 집행한 탓에 요즘은 자금의 씨가 마른 상황이다. 「묻지마 투자」를 단행, 유동성 위기에 빠진 곳도 적지 않다. 한능벤처기술투자 김철우 전무는 『일부 업체는 설립과 거의 동시에 자금을 소진한 경우까지 있다』며 『코스닥 침체가 더 장기화되면 한계기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들의 주자금원인 벤처캐피털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반적인 벤처금융시장 분위기가 냉각돼 기관투자가들이나 법인, 개인들까지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벤처기업에 자금이 제때에 충분하게 유입되지 못해 이른바 「돈맥경화」 증세가 심하다. 이는 결국 투자위축-벤처기업 자금난-투자회수 부진-투자재원조달 차질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의 1차 원인은 벤처자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즉, 벤처비즈니스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채자금 등 단기투자 성향의 자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 실제로 사채자금이 벤처캐피털에 상당히 유입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벤처자금시장이 일반 자금시장이나 주식시장 상황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 안정적인 투자패턴을 가로막고 있다.

벤처기업과 동반자를 자처하는 전문 벤처캐피털들이 투자기업의 경영지원이나 가치제고에는 관심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자본이득(캐피털 게인)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다. 벤처캐피털은 기본적으로 자본투자 외에 네트워크와 경영지원을 수반해야 하는데도 불구, 위기에 빠진 벤처기업을 나몰라라 하는 것이 우리 벤처금융산업의 현실이다.

투자회수(exit)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는 부분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회수시장은 벤처금융시장의 안정적 성장의 필수조건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벤처주식시장으로 간주되고 있는 코스닥시장을 건전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되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벤처의 진입과 퇴출, 재기가 더욱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인수합병(M &A)시장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양질의 자금이 벤처캐피털을 통해 자유롭고 풍부하게 유입되고 이를 토대로 기업가치를 높여 고수익을 창출, 이 자금이 또 다시 벤처로 활발하게 재유입될 수 있는 벤처자금시장의 선순환 고리를 잇는 작업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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