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DVR수출 허와 실

지난 1년동안 국내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생산업체들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수출계약 실적은 줄잡아 3억달러 규모. 세계 DVR시장 규모가 연간 3억∼5억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할때 실로 엄청난 규모의 수출계약이 체결된 셈이다.

더욱이 국내 DVR 생산업체들은 연간 매출규모가 수십억원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연간 매출규모보다 큰 150억∼300억원에 이르는 수출계약을 수시로 발표해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수출계약 발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DVR의 수출액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상당수 DVR 생산업체들이 회사 홍보 및 외부자본 유치, 코스닥시장 등록 등을 위해 DVR 수출계약 내용을 과대포장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들 업체는 언론매체가 수출계약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기사화하고 일단 기사화가 된 이후에는 후속 보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마저 있어 일반투자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DVR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문제는 우리나라 산업계 전반에 걸친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수출유망품목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DVR업계에서 이같은 사례가 비교적 많은 실정이다.

지난 1년동안 대외적으로 발표된 DVR 수출계약 내용을 중심으로 DVR 수출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수출실적 =지난해부터 국내 업체들이 발표한 수출계약대로 수출이 이뤄졌으면 우리나라는 세계 DVR시장의 종주국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발표수치와는 다르게 정작 수출실적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 N사와 3000만달러 어치 DVR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S사의 경우 사실상 계약이 파기돼 1년이 지난 지금까지 N사에 대한 수출실적이 전무한 상태다. 또한 올초 1500만달러 수출계약을 자랑했던 C사는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15억원 안팎의 물량을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초 연간 2500만달러 수출계약을 발표한 K사의 경우는 6개월이 지난 10월말 현재 불과 10억원 어치의 제품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내년 1월까지 일본 D사에 15억엔 어치의 DVR를 공급키로 했다고 한 코스닥 등록기업인 S사도 10월말 현재 5000만엔 어치의 제품을 수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 9월말까지 LC오픈 등 수출을 위한 세부작업을 마무리짓고 미국 S사에 본격적인 제품 수출에 들어간다고 발표한 H사는 아직까지 S사에 공급할 제품의 스펙 및 월간 공급물량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대량 수출계약을 발표했던 다른 업체들의 상황도 이같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출부진 이유 =대외적인 발표와는 달리 DVR 수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DVR 생산업체들의 상당수가 수출계약 내용에 문제가 있거나 이를 확대 포장해 발표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사례 1. 부실한 수출계약 내용이 가장 큰 문제다. 수출했다는 눈앞의 실적에 얽매어 수출계약 내용을 자세히 따져보지 않고 작성하고 있다. 수출계약을 맺은 상대방 업체가 수출물량 및 금액을 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수출계약서 내용이 곧바로 수출실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계약서상에서는 「개런티 물량을 얼마로 한다」는 조항이 대부분 삽입돼 있으나 이 역시 형식적이다. 상대방측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나 방법을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1년전 일본 N사와 3000만달러 수출계약 체결을 발표한 S사는 이 회사에 대한 수출실적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떠한 후속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으며 K사 역시 대량 수출계약 발표와는 달리 수출실적이 지진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대응방안이 전혀 없는 상태다.

심지어 K사의 경우 수출계약을 체결한 미국 A사의 매출규모 및 주력생산품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사례 2. 수출계약 내용을 사실과는 다르게 발표하거나 확정되지도 않는 내용을 확정된 것처럼 부풀려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C사의 경우 당초 호주 주정부와 1500만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 주정부에 제품을 공급키로 한 호주 총판인 A사와 수출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더욱이 이 수출계약서의 경우에는 수출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수출계약의 기본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I사의 경우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포기 파문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V사와 실질적인 구속력을 답보하지 못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상태에서 대량 수출계약을 발표한 것이어서 과연 어느정도 규모의 수출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다.

H사 역시 대외적으로 발표한 수출계약에 대한 실질적인 구속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실제 수출실적을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중소 벤처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P사는 국내 업체와의 공동 마케팅을 위한 업무제휴조차 수출계약 체결로 과대포장해 발표하고 있다.

이밖에 일부 업체의 경우에는 해외 현지법인 창고에 제품을 실어내고 마치 이를 수출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발표하는 사례마저 있다.

◇피해 및 문제점 =이처럼 DVR 생산업체들의 과대포장된 수출계약 체결 발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와 묵묵히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선의의 DVR업체들에 돌아가고 있다.

수출계약을 체결했다는 발표에 따라 실적호전을 기대하고 DVR업체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은 실제로 수출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수출부진에 따른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또 DVR업계의 무분별한 대량 수출계약 체결 발표는 DVR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감을 키워 제대로 된 수출계약을 체결하거나 묵묵히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는 DVR업체들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DVR업계가 내용이 부실한 대량 수출계약 체결을 앞다퉈 발표하는 이유는 회사 홍보 및 외부자본 유치 그리고 코스닥 등록 등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량 수출계약을 발표하면 언론과 일반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져 회사 이미지가 제고되는데다 실적호전을 기대한 기관 및 일반투자자들의 자금을 보다 쉽게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량 수출계약 체결에 대해서는 신문 등 언론매체가 비교적 관심을 갖고 보도를 하지만 일단 보도가 된 후에는 실제 수출실적에 대한 후속보도가 전혀 없다는 점도 DVR 생산업체들이 수출계약 발표를 남발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문제는 비단 DVR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계 전반, 특히 외부의 관심을 끌기 원하는 신생기업들에 많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대응책 =현실적으로 과대포장된 수출계약 발표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업체가 해외 업체와 수출계약서를 작성, 수출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할 경우 이를 제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수출계약 체결이 발표되면 그 내용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계약서의 구속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 실제 수출가능성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부실한 수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대량 수출계약 체결로 포장해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업체들에 현혹되지 않고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해당 업체들이 관련산업의 발전과 업체들에 대한 신뢰성 회복을 위해 과대포장된 수출계약 체결 발표를 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대 수출계약 체결 발표는 단기적으로는 투자자들을 현혹시켜 해당업체에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해당업체뿐 아니라 관련업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김성욱기자 sw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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