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P장비업계 이대론 안된다]하-수평적 연합 구축 새 출발을

국내 VoIP 업계의 과당 출혈경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1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무리해서라도 프로젝트를 수주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솔루션 공급업체에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장비업체에 전가하기에는 국내 사업환경이 너무 취약하고 험난하다는 것이 업계의 지론이다.

솔루션을 구축하려는 관공서나 대형서비스업체들은 철저히 갑의 입장에서 국내업체간 또는 국외업체간 가격경쟁을 유도하고 있고 「좋은 제품을 제값 주고 산다」는 기본적인 경제원칙이 무시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벤처기업들만 성직자가 되길 바라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지난해 모통신사업자와 솔루션 공급프로젝트를 협의하기 위해 방한한 루슨트테크놀로지스 김종훈 사장에게 프로젝트 진행상황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자 김 사장은 『통신사업자가 시스템 공급업체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원한다』며 『무리한 요구가 많아 프로젝트에 참여할지 다시 한번 검토해 볼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것처럼 지난 1년 6개월간 한국통신 입찰에서 예가의 99%대에 낙찰받은 건수가 전체계약 건수의 30%대에 달하지만 VoIP나 컴퓨터통신통합(CTI) 업체들이 30%대에 속하지 못하는 것은 일부 대형 장비업체에만 혜택이 편중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업체들은 지적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자본구조가 취약한 벤처기업들은 아무리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규모의 경제에 밀려 못다핀 꽃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 들어 VoIP에 대한 가능성을 인지한 정부가 주체적으로 VoIP 포럼을 구성하는가 하면 기술표준화 및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향후 1년간 1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활로가 마련되고 있다.

또 일부 업체들은 기술 또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패밀리 그룹을 결성, 중복투자, 과잉경쟁 등을 지양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스엘시스템즈 박인수 사장은 『프로젝트 하나에 10여개의 업체들이 모여들어 죽기 살기로 경쟁하기보다는 동종 업체들이 대단위 컨소시엄을 결성, 기술력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상호협력적인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수직적인 연대가 아닌 수평적인 연대로 업체들이 연합할 경우 최고의 기술력을 결집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당경쟁도 방지할 수 있어 외국 자본력에 의한 국내시장 방어는 물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여기에 출혈 가격경쟁을 유발해온 현재의 입찰방식을 최저가 입찰방식이 아닌 성능평가시험 점수와 입찰금액을 적절히 안배한 종합평가제로 개선한다면 국내 VoIP 업체들의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급성장하게 될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업체들이 가격경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기술적 연대를 통해 업계 공동으로 세계적인 기술력을 배양,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관공서와 기간통신사업자들은 좋은 장비를 제값 주고 구매하겠다는 노력으로 공정경쟁 입찰을 유도해 나간다면 우리나라 VoIP 산업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1년간 부끄러운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이제는 더 늦기전에 다부진 결심으로

다시 출발해야 할 때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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