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협회 김영준 회장
정부의 추가 공적자금 투입, 장기적인 거래소 및 코스닥시장의 침체 등 한국경제가 좀처럼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우리 경제에 힘을 실어주었던 대외적인 환경은 중동의 불안 및 산유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고유가정책으로 수출전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벤처산업은 벤처캐피털의 투자위축으로 인한 벤처기업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어 자칫 벤처산업의 붕괴로까지 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벤처산업의 현재 상황 및 정부 정책에 대해 몇 가지 논하고자 한다.
최근의 벤처캐피털 상황을 보면 중기청에 등록된 약 150개의 벤처캐피털 중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는 투자자금 부족 및 경제침체 등으로 인해 벤처기업에 투자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소위 리딩 벤처캐피털이라는 회사조차도 투자규모가 대폭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은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공생관계에 있다. 벤처기업이 있어야 벤처투자를 하듯 성공한 우수 벤처캐피털이 많을수록 벤처기업이 더욱 탄탄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생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벤처캐피털 업계에 대한 여러가지 정부의 정책을 보면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코스닥시장의 안정을 위한 시장운영 개선대책」을 보면, 벤처캐피털이 코스닥시장의 안정을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벤처캐피털의 주식매각 제한과 벤처캐피털 임직원에 대한 투자금지 조치가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코스닥시장은 조금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발표된 정부대책은 코스닥시장 안정과 벤처캐피털과는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만 코스닥시장의 침체는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수급불균형이 주요 원인이다. 이 중 벤처캐피털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다. 물량으로 보자면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벤처캐피털의 주식만 매각을 제한한다고 코스닥시장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벤처 임직원의 벤처기업 투자금지 조치도 마찬가지다. 코스닥시장 안정과는 무관한 조치다. 벤처캐피털은 많은 위험부담을 가지고 벤처기업 사업초기에 자금지원을 하여 보통 2∼3년 뒤에 수익을 기대한다. 그동안 투자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 벤처캐피털의 산실인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벤처산업은 벤처기업가, 벤처캐피털리스트,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들이 주도한다. 여기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단순히 자금을 대여해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기업가와 함께 자신이 투자한 업체를 실제로 통제하고 경영에 책임을 지는 역할을 통해 기업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필요에 따라서는 기업가를 해고할 권한도 가질 수 있다. 이는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소수의 일정 지분 취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벤처캐피털을 경영하면서 해외 유수 벤처캐피털업계 인사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그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벤처캐피털은 책임경영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임있는 투자를 하는 데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벤처기업 투자도 필수적인 것이라고 한다. 위험과 책임을 동시에 져야 하는 것이 벤처기업 종사자인 것이다. 또 그렇게 하여야만 벤처캐피털에 투자자금을 맡긴 일반 투자자도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는 벤처 임직원의 벤처투자가 권장사항으로 되어 있다. 일부 도덕적인 문제는 법에 의해 처리하면 된다. 벼룩 한마리 잡으려 하다 초가삼간 태우는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국민의 정부가 벤처사업 육성에 한 축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불필요한 정책은 벤처산업을 위축시키고 코스닥시장의 침체를 가져온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과연 정부내에 벤처캐피털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정말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로 벤처캐피털의 주식매각 제한과 벤처캐피털 임직원에 대한 투자금지 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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