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데이트>프로게이머 김인경

『스타크래프트에서는 현실세계의 나와는 다른, 가상세계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어 좋습니다. 그 속에서는 소극적이고 평범한 김인경은 없고 승부욕이 강한 쌈장 프린세스(김인경의 배틀넷 ID)만이 존재합니다. 비록 미래 종족의 싸움터지만 배틀넷에는 사랑과 전쟁, 우정과 배신, 성공과 좌절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9월말 막을 내린 KIGL 추계리그 여성부문에서 우승, 스타크래프트의 퀸으로 등극한 김인경(26)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예찬론이다.

167㎝의 시원한 키에 단아한 용모를 지닌 김인경은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곱기만한 얼굴에선 쌈장으로서의 비장함까지 엿보인다. 그만큼 스타크래프트는 김인경의 26년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김인경은 94년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 그대로 평범한 소녀였다. 학교 성적은 중간정도였고 성격도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남들이 다 가는 대학을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프로게이머로 화려한 변신을 하게 만든 스타크래프트와 운명적인 조우를 한 것은 지난해 봄. 『99년 3월 채팅을 하려고 PC방에 들렀다가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어렵기만 하고 외계 종족의 캐릭터들이 징그럽기까지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대했을 뿐 김인경은 마우스나 키보드 조작도 빠르게 하지 못할 정도로 컴맹에 가까웠다. 그러나 첫사랑에 빠진 소녀가 그렇듯이 김인경은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만난 후 6개월 동안 열병에 휩싸였다. 『자리에 들어 눈을 감아도 저그가 어른거렸습니다. PC방에서 식사를 배달시켜 먹으면서 50시간 동안 스타크래프트만 한 적도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퇴근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스타크래프트에 매달렸습니다. 나중에는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 결국 지난해 10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을 그만두고 전업 게이머의 길에 들어섰다.

전용선까지 갖추어 놓은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스타크래프트에만 매달린 지 5개월 만인 올해 3월 배틀탑 전국대회 여성부에서 1위를 차지해 「스타크래프트 퀸」의 자리를 예약했다. 이어 SBS 하나로 최강전, 아이터치배 배틀탑 인터넷 게임리그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6월 삼성전자의 프로게임단 칸에 입단, 프로게이머로서의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프로 데뷔 3개월 만인 지난 9월말

KIGL 추계리그에서 우승, 스타크래프트의 퀸으로 등극했다.

『바둑만큼이나 경우수가 많고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경기를 벌이는 스타크래프트에 정석은 있지만 왕도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독특한 전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초보자의 경우에는 종족 고르기, 빌드, 일대일 유한맵 등으로 기초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일정수준에 오르면 피나는 연습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이 과정에서 김인경은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프린세스」를 찾아냈다.

『비록 가정형편 때문에 남들 다 가는 대학에도 못 갔고 게임 때문에 어렵게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일로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선은 KIGL 동계리그에서도 소속팀인 칸이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소속팀의 큰언니답게 칸의 우승을 최고의 목표로 내세웠다. 동계리그에서도 우승을 해 시즌 2연승을 달성한 후 12월에 열리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자신이 「퀸오브퀸」임을 입증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세계대회 우승,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아요. 이제 겨우 26살이니 지면 이길 때까지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 도전할 생각입니다.』 특유의 승부욕을 다시 보여주는 김인경은 올해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내년 이맘때 열리는 세계 게임대회(월드사이버게임대회)에서는 남자들과 당당히 겨루어 지존임을 확인시켜 주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감독이 본 김인경◆

정수영<삼성전자 프로게임단 칸 감독>

김인경은 지독한 노력파다. 시합을 앞두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연습을 하는 것을 보면 때로는 「독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배틀탑 전국대회 여성부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올초부터 최근까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결코 지지 않겠다는 승부 근성과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하지만 김인경의 플레이는 너무 정직하다. 김인경의 주종목은 저글링 러시인데 경기 패턴이 다양하지 못해 상대방이 전략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김인경에게 테크닉을 강화하도록 주문하고 있으며 팀내 후배로서 테크닉이 뛰어난 김가을 선수와 대전을 자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동계리그에서도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팀내 큰 언니로서 남자선수들까지 챙겨주는 김인경은 쌈장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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