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2-디지털문화 대혁명>소비자 문화주권시대 개막

인터넷을 통한 권력 이동(power shift)이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동명의 저서에서 예견했던 「권력 이동」은 「전통적인 국가가 장악하고 있는 권력이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정보 권력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정보 권력의 실체가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인터넷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디지털 주권」이라는 용어로 최근들어 자주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 주권이 현실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이미 4, 5년 전부터다.

네티즌의 「힘」으로 언론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 디지털 주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연예계나 방송·음악·영화 비평 등 문화적인 부분에서부터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정 연예인에 대한 선호나 비판 등이 방송가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 나타났고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가 시장 판도를 결정하는 등 현실 사회의 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같이 문화적인 부분에 집중되던 네티즌들의 영향력은 올해들어 1000만 인터넷 인구 시대가 열림으로써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최근 방송사에서 시사 프로나 뉴스에서 종종 다뤄지는 사회적 이슈들 중에는 네티즌들의 「함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S여중 폭력 사건」은 최근에도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계속 이슈가 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4월 발생한 이 사건은 자유총연맹 간부를 아버지로 둔 한 학생이 주도가 되어 다른 학생을 집단 구타한 사건이다. 피해 학생이 거의 실신지경이 되도록 맞았는데도 학교측과 경찰측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피해 학생 어머니의 호소로 문제가 된 이 사건은 특히 가해 학생이 『우리 아빠가 다음엔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된댔어. 그러면 우리 아빤 아무도 못 건드려』라는 글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이 이회창 총재의 홈페이지에 공식해명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는 등 일파만파의 과정에 있다.

네티즌들은 S여중 홈페이지와 자유총연맹 홈페이지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의 사이트 등을 통해 활발한 토론을 전개중인데 가해학생을 인터넷에서 매장시키자는 논리로 가해학생의 사진을 올려놓는 등 감정적인 대응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언론과 검찰 등이 계속 미온적인 대응을 보이면서 감정이 격화

돼 최근들어서는 기존 제도권과 네티즌간 힘의 대결 양상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이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이제 기존 언론과 제도권이 네티즌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단계를 넘어서 네티즌들이 곧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단계에까지 이를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힘에 의해 본격적으로 「디지털 주권」을 응집시키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각종 안티(anti) 사이트들의 등장이 그것. 대표적인 곳이 특정 언론사에 대한 안티 사이트를 표방하고 나선 딴지일보다. 아직까지도 디지털 주권의 중심지로 평가받고 있는 딴지일보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싣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주권의 상징적인 표본이라고 평가할 만한 곳이다.

정치권에 대한 보수 언론의 기사에 대한 해부, 논설이 인용한 원문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등 기존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접근법으로 네티즌 사회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부분이다.

이 밖에도 음악계의 표절관행을 직접 음악을 비교해 가면서 가수나 작곡자의 변명을 일거에 격파시키고 언론의 영화평을 거꾸로 해석해 새로운 「영화보기」 방법론을 제시하는 등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애쓰고 있다.

이러한 딴지일보류의 「네티즌 언론」은 인터넷의 특성상 현실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청와대 홈페이지나 민주당·한나라당의 홈페이지 등 각 정당의 홈페이지에서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으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네티즌의 목소리가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참여연대가 실시했던 「낙선 운동」은 디지털 주권이 현실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물론 인터넷 외의 언론 등을 통해서도 낙선 운동이 힘을 발휘했지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낙선운동 대상자 명단 공개와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호응은 현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영향력이 디지털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출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문제는 이렇듯 급부상하고 있는 네티즌들의 힘에 대한 여과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네티즌들의 여론 형성과 힘의 결집은 국내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잘 알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자칫 감정에 휩싸인 일부 의견의 결집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의 S여중 폭력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부분적으로는 차분한 논조가 있지만 대부분은 가해학생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의 목소리였다. 네티즌들은 주어진 정보 이상의 것은 알기 힘들고 단편적인 정보나 언론의 보도 등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칫 감정적인 판단에 흐르기 쉬운 특징이 있다. 결국 차분하고 조직적인 비판보다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흐르기 쉬운 것은 이러한 정보의 부재와 필터링을 해 줄 수 있는 시민단체나 여론 사이트가 아직 미성숙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네티즌의 힘이 좀더 과도해지기 전에 이러한 여론을 여과해 줄 수 있는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 장치는 과거의 제도기관이나 시민단체처럼 국민의 앞에 서서 국민을 교육시키고 여론의 방향을 호도하는 모습이 아니라 네티즌이 직접 중심에 서서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네티켓」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이

제까지처럼 단순히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필요한 「예의」 정도가 아니라 법적 제도처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으로 스스로 인식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네티켓을 규칙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과 각 사이트에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규칙에 대한 엄격한 적용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인터넷 이용 문화의 성숙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

<표>시민단체 및 각종 안티 사이트들

1. 시민단체

사이버 참여연대(http://www.peoplepower21.org/home.html)

정보연대(http://www.sing-kr.org/)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http://www.ccej.or.kr/)

2. 각종 안티 사이트들

예잔티(http://www.yesanti.com)

딴지일보(http://www.ddanzi.com/ddanziilbo/home.html)

반대국민연금(http://www.korealabor.com/anti-npc/)

매향리 미군 국제 폭격장 폐쇄 범국민 대책위원회(http://maehyang.jinbo.net/)

의약분업 전문사이트(http://www.erx.co.kr/)

이동전화 요금인하 소비자행동 네트워크(http://con.ymca.or.kr/sign/index.html)

불만공화국(http://www.bullm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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