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세진컴퓨터랜드의 부도는 국내 컴퓨터 유통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세진이 갖고 있던 재고가 시장에 나돌고 결과적으로 유통질서가 난맥상을 보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국내 최대, 아니 아시아권 최대의 컴퓨터 양판점이 몰락함으로써 양판점·대리점·조립PC로 구분됐던 컴퓨터 유통업계의 판도가 새로 짜여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진컴퓨터랜드의 부도는 과연 컴퓨터 양판점 시대의 몰락을 의미하는가. 또 구매자 위주의 시장구조에서 다시 제조업체 중심의 시장구조로 회귀되는 단초가 될 것인가. IMF를 맞이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컴퓨터 유통업계는 최근 경기불황에다 세진부도마저 겹쳐 전례없이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빈사상태에 놓여있는 컴퓨터유통 환경변화와 원인, 앞으로의 전망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
컴퓨터 유통업계의 「골리앗」 세진컴퓨터랜드가 최종 부도처리됐다. 지난 90년 10월 부산 서면에서 시작해 95년 5월 서울 잠실에 매장을 내면서 매머드급 컴퓨터 유통업체로 부상한 지 불과 5년 만의 일이다.
이와 함께 「초대형 PC양판점」을 기치로 지난 97년 9월 출범한 티존코리아도 지난 6월 30일자로 현대오토넷에 합병되는 등 양판점으로서의 입지가 약화돼 「PC양판점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세진은 95년 서울 입성때만 해도 「가격파괴」를 무기로 매달 대여섯개의 대형 매장을 잇따라 열고 대대적인 광고를 펼쳐 업계의 주목을 끌었지만, 그로부터 6개월 뒤에는 엄청난 광고비와 점포임대비 등으로 자금난을 겪는 등 부도위기를 맞이했다. 실제로 세진은 당시 점포수를 늘리면서 정확한 상권분석 없이 건물의 2층에 매장을 내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철수대상 1순위가 됐다.
결국 세진에 막대한 양의 제품을 공급해주었던 대우통신이 96년 2월 세진의 지분 51%를 확보함으로써 세진을 인수했다. 1차 부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대우통신은 세진을 인수한 후 당시 세진호의 함장이었던 한상수 사장에 대해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한편 매출확대 및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어려움이 계속됐다. 지난 97년 세진은 78개 직영매장과 16개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모두 4384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윤도 10%선인 422억원을 기록했다. 직원 1인당 월 매출액도 1200만원으로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951억원이라는 거대자금이 판매관리비용으로 지출됨에 따라 영업이익은 540억원 적자에 경상이익은 82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것은 세진이 기울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세진은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프랜차이즈를 통한 직영점의 축소와 인력감축 등을 시도하고 나섰다. 98년에는 직영점을 60개로 줄인 대신 가맹점은 35개로 늘렸다. 이로써 매출액은 2800억원으로 크게 줄었지만 매출총이익은 319억원을 기록해 97년보다 좋아졌으며 1인당 월매출액도 1800만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판매관리비용은 605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그 비율이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는 경상이익이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매출은 2829억원에 매출이익은 345억원을 올린 반면, 판매관리비로 594억원이 지출돼 영업이익 249억원 적자, 경상이익 912억원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직영점은 55개로 줄이고 가맹점을 151개로 늘려 유통망을 총 206개로 확충했지만 지난해 7월 대우그룹 사태가 터지면서 자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제품공급에 어려움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97년 현대전자가 일본 아도전자와 합작으로 설립한 「티존코리아」도 최근 PC양판점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올 2월, 2호점이었던 강남점을 철수한 데 이어 지난 6월말 현대오토넷에 합병됨으로써 사실상 PC양판점으로서의 입지를 상실했다. 1호점인 종로점은 그대로 운영을 계속할 방침이지만 현대오토넷에 합병되면서 지난해 120여명이었던 유통부문 인력이 최근에는 8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지분 25%를 가지고 있던 합작투자법인 아도전자도 지분을 빼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PC유통의 본보기를 보여주려던 꿈을 접었다.
티존은 세진의 경우와는 달리 자발적으로 사업을 축소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이유는 우선은 출점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97년 10월 1호점을 낸 이 회사는 오픈시점에 「1원 판매」 행사로 일약 유명 유통업체로 부각됐지만 98년 IMF 시기로 접어들면서 투자대비 수익성이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98년 3개의 직영점을 내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강남점 한곳을 개점하는 데 그쳤다.
또 한가지 요인은 그룹의 계열사 정리작업 바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적을 다그치는 정부에 대해 현대는 변변히 수익도 내지 못하는 티존을 희생양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티존은 그러나 컴퓨터 전문 인터넷 쇼핑몰로 다시 승부를 건다는 계획이어서 완전히 이 부문을 정리한 것은 아니다.
컴퓨터 양판점은 96년 아프로만이 B&B라는 이름으로 직영매장을 설립한 데 이어 세진컴퓨터랜드·티존코리아 등이 잇따라 나섰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양판점이 없다. 무리한 유통망의 확장, 강해진 브랜드PC의 파워, 경기불황에 따른 매출 및 마진의 감소 등이 그 이유다.
세진의 가맹점이었던 188개 PC유통점이 「드림2000」이라는 유통업체의 가맹점으로 새로 태어날 예정이지만 과연 양판점의 위상을 갖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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