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덕밸리는 100만원으로 시작됐다.
지난 73년 대덕연구단지 설립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낸 100만원이 오늘의 대덕밸리를 만든 종자본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선택은 분명하고도 단호했다. 살기 위해서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하고 여기에 과학기술은 필수조건이라는 인식이었다.
지난 74년 3월부터 충남 유성군 일원에 단지기반시설 조성 및 연구기관 건설사업이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800여만평의 이 지역과 대전시 서구·유성구 일대를 대덕밸리라고 부른다.
66개의 연구기관과 그 외곽을 포진한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600여개의 벤처기업. 바로 이들이 대덕밸리의 힘이다.
◇대덕밸리의 새로운 변화=대덕밸리에 벤처기업이 모여들기 시작한 때는 지난 93년께부터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출신들이 연구단지 인근에 회사를 창업하면서 벤처기업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연구원의 전공만큼이나 다양한 벤처기업군이 형성된 것이다.
출연연에서 나온 과학, 정보통신, 컴퓨터, 화학, 항공우주, 측정, 원자력기술 등은 이들 벤처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이들 벤처기업은 첨단 기초기술과 시스템, 각종 소프트웨어들을 국산화함으로써 막대한 수입대체 및 수출효과를 거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와 대전광역시는 그간 대덕밸리를 위해 무수히 많은 정책을 만들어냈다.
정부가 갖고 있는 대덕밸리 발전의 기본 구상은 연구소 중심의 대덕연구단지를 산학연 연계형 산업연구단지로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단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는 대덕밸리 내에 실험실 공장입주를 허용하는 등 관련법 개정도 마친 상태다.
대전시도 정부 구상에 따라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모델로 발전시킨다는 목표 아래 연구소의 연구결과물을 곧바로 신기술창업보육센터 외에 대전시가 구성중인 128만평 규모의 과학산업단지와 연계시키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대덕연구단지, 벤처기업 입주 증가=IMF구제금융 파동 이후 많은 수의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떠났다. 그러나 이들 연구원은 다시 벤처기업가가 되어 대덕연구단지를 「벤처단지」로 변화시키고 있다.
대기업의 연구소들이 대덕밸리를 떠나고 있으나 이들의 빈자리를 과학기술,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메우는 형국이다.
대덕단지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앞다퉈 창업보육사업에 나서면서 이들 센터에 입주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아예 연구단지내 자체 건물을 확보해 입주하는 등 대덕밸리를 명실상부한 「벤처기업의 산실」로 변모시키고 있다.
현재 대덕밸리는 정보통신 벤처기업 100여개사가 입주해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업지원센터, 한국과학기술원 신기술창업지원단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이 운영하는 KAIST 캠퍼스내 창업보육센터에는 정보통신 뿐만 아니라 생명공학, 환경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시가 운영하는 대덕연구단지 대전중소기업지원센터에도 현재 28개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이와 별도로 연구단지와 인접한 제4공단에 있는 다산관에는 정보통신, 기계분야 벤처기업 9개사가 입주해 있다. 대전시는 제4공단에 장영실관을 건립, 연구단지와 4공단을 연계한 벤처창업타운 건설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대전엑스포 과학공원내에도 정보통신 벤처기업의 입주가 이어지고 있다. 엑스포기념재단 건물에 지씨텍, 인터시스, 브이알토피아, 다림비전, 다림제어기술 등 5개의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대덕밸리에 별도의 건물을 설립해 입주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다음, 한백, 운상정보통신, 에이스 등이 이미 별도 건물을 건립하여 입주해 있다. 욱성전자, 해동정보통신, 오름정보, 덕인 등 4개 기업도 대덕연구단지내에 자체 건물을 마련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산하 대전SW지원센터도 최근 50억원의 자금을 마련, 대덕대학 건물을 임대해 SW기업들을 대거 입주시켰다.
대덕연구단지 내 창업보육센터나 지원센터에 총 300여개의 과학기술, 정보통신 벤처기업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바로 구조조정으로 침체된 대덕밸리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같은 대덕밸리 활성화 움직임은 전자통신연구원, KAIST, 정보통신대학원대학 등 관련 연구시설이 집적돼 있어 정부의 첨단 연구결과물에 대한 상품화가 용이하다는 이유에서 기인한다. 벤처기업들은 출연연과 연계할 경우 연구 결과물을 조속히 상품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덕밸리를 선호한다. 또 기술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을 조기에 극복할 수 있는 지원조직이 풍부하다는 점도 연구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선호요인이 된다.
◇정부, 밸리의 중심축은 벤처기업으로=우리나라 벤처육성정책은 창업, 자금, 육성 등이 총망라된 「벤처 백과사전」이라 할 만큼 매우 포괄적이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육성정책은 중소기업청이 주도하고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등 정부부처가 「후원」하는 틀로 이뤄진다. 하급부처가 상급부처의 벤처 육성정책을 주도하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중소기업, 벤처기업의 「경제부흥」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중소기업청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리의 벤처기업제도는 철저한 자유시장경쟁체제, 자유방임형 벤처기업제도와는 그 근본부터 다르다. 정부가 각종 지원제도를 만들고 이를 민간단체와 기업들이 따라가는 형태다. 이는 초기 우리나라의 정부주도 경제개발 전략과 흡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벤처기업들이 「지원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지원제도가 형편없다」며 벤처기업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대덕밸리에 포진한 기업들에 지금 어려운 문제는 자금력의 부족이다. 기업 운영에 있어 기술과 마케팅, 자금은 필수적인 요소다. 대덕밸리 기업들은 이중 자금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덕엔젤클럽을 비롯한 엔절투자자와 일부 창투사가 대덕밸리에서 투자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이를 채워주기에는 미흡하다.
대덕밸리에서 개발된 첨단 결과물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제한적이다. 150여만명의 대전 인구는 밸리에서 개발된 결과물을 소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대덕밸리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대덕밸리 기업을 육성 성장시킬 수 있는 자금지원 체계, 마케팅 체계의 수립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대덕밸리의 경우 태생이 정부주도였듯이 벤처기업이 다수 포진한 지금에도 관주도의 벤처육성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부 연구소와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대덕아고라를 만드는 등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이를 통해 모든 문제해결을 하기는 아직 요원하다.
대덕밸리의 벤처기업들은 테헤란 밸리의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테헤란 밸리가 벤처기업중 성공한 기업들의 모임이라면 대덕밸리에서의 벤처기업의 의미는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 「영세한 기업」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대덕밸리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개발된 기술도 테헤란 밸리의 그것을 능가한다. 서울의 성공한 기업중 대부분 대덕밸리 출신이라는 것도 대덕밸리 벤처기업의 기술력을 가늠케 한다.
◇대덕밸리, 시장여건 구축이 우선=대덕밸리가 성장하려면 다른 밸리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벤처기업이 만든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시장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특히 정부차원에서 벤처기업에 대한 기술, 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고 구매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해주는 것이 유리하다. 이럴 경우 기술력, 마케팅 능력이 있는 벤처기업의 제품이 사장되지 않고 매출로 직결되며 벤처기업이 자연스럽게 시장원리를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덕밸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입주기업의 열악한 지리적 요건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덕밸리 고유의 성장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단순한 물적자원을 연계한 정보네트워크보다는 창업부터 코스닥까지 연계해 성장시킬 수 있는 인적, 물적, 경제적, 문화적 자원이 총동원된 시스템이 구성돼야 한다.
기존 대덕밸리 관련 지원방안은 정부, 지자체, 출연연 모두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벤처기업이 자신을 찾아와서 하소연해야만 문제를 해결하는 전근대적인 벤처기업 육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정부, 지자체, 출연연, 자금 소유자가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모여 한개 기업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벤처 육성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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