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업계에 공급과잉 시점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부 증권회사 및 시장조사기관의 분석가들은 세계 반도체업체의 설비 증설 경쟁이 본격화해 내년 말 또는 2002년 초 공급과잉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면 대부분 업체와 분석가들은 반도체 수요가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어 당초 예상보다 늦은 2003년께에나 공급 과잉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국내 업계는 반도체경기가 뚜렷한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시점에 느닷없이 발생한 이러한 논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아울러 그 배경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공급과잉론과 잇따른 주가 폭락
과잉생산 논란의 발단은 지난 5일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의 한 분석가의 한마디다.
이 증권사의 반도체 담당 분석가인 조너선 조지프는 『반도체 수요가 많은 휴대폰의 판매 증가율이 떨어진 데다 반도체 공급물량도 늘어나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 것』이라며 『앞으로 1년 안에 반도체 경기가 꺾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늦어도 2002년까지는 시장 전망을 낙관하고 반도체 주식에 자금을 쏟아부었던 투자가들은 놀라 주식을 매각하기 시작했고 미국, 일본, 대만 증시의 주요 반도체주가 폭락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어서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주가가 내림세를 보였다. 그러나 각국의 반도체 주식은 며칠 뒤 전반적인 오름세로 돌아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워버그 등 다른 증권사의 반박 보고서와 반도체 업체의 밝은 수익전망 보고서가 잇따라 나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들 증권사와 업체들은 『반도체 경기 둔화 전망은 시기 상조』라며 『살로먼증권의 분석은 극히 일부의 반도체 시장에 국한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와 VLSI리서치에서 『2002년부터 급격히 반도체 경기가 식을 것』이라고 주장, 공급과잉과 경기 침체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왜 논란이 이나
조기 공급과잉론자의 단골 메뉴는 휴대폰용 반도체다.
살로먼증권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IC인사이츠의 매클린 회장, VLSI리서치의 푸하카 부회장 등은 『반도체 업체들은 통신칩, 플래시메모리 등의 생산을 늘리고 있으나 정작 휴대폰 시장의 성장은 둔화되고 있다』면서 공급과잉을 경고했다.
이같은 주장은 현실과 맞아 떨어진다. 거침없이 성장하던 휴대폰 수요가 최근 주춤했으며 플래시메모리의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인텔, NEC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통신과 멀티미디어 시장을 겨냥해 라인 신증설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D램 등 메모리시장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통신칩의 생산 확대가 공급 과잉을 불러 올는지도 미지수다.
통신칩의 경우 휴대폰 대신 등장한 「IMT2000」 등의 신규 수요가 생산량의 증가 못지 않게 늘어날 전망이다.
D램 반도체의 경우 아예 신증설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라인을 신설하는 업체는 200㎜웨이퍼 10라인을 건설중인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하며 나머지 업체들은 자칫 골칫거리가 될 200㎜웨이퍼 라인 투자에 머뭇거리고 있다.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300㎜웨이퍼 투자 역시 검증되지 않은 장비가 수두룩해 D램 업체들은 「수업료」를 먼저 내려 하지 않는다.
D램 반도체 분야에서는 내년까지 신규 라인 증설이 미진할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설비 보강에 그칠 전망이다.
2002년 초에 라인 증설에 들어가도 그 효과는 2003년께부터 서서히 나오기 때문에 공급 과잉은 그 이후의 문제다.
올해 초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은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투자 위험성에 대한 메모리업체의 움츠림으로 생산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다고 해도 예전에 비해 공급업체수가 줄어들어 공급과잉의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공급과잉 논란에 대해 『비메모리 반도체 일부에 해당되는 경기 과열론이 엉뚱하게 메모리 반도체에까지 번져 나온 해프닝』이라면서 『사정을 잘 아는 반도체 분석가들이 이같은 보고서를 내놓은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특히 조기 공급과잉론이 증권사에서 흘러나온 것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D램 반도체 업체의 주식을 값싸게 사들이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공급과잉론이 사그러진 이번주 초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다른 한켠에서는 일본 업체들이 경쟁사인 한국 업체들의 라인 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역정보를 흘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음모론은 한낱 가설일 뿐이다. 또 조기 공급과잉론은 4년을 주기로 공급부족→호황→투자 확대→불황으로 이어지는 「올림픽 사이클」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는 경고로서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이미 흘러간 얘기로 여겨졌던 2002년 반도체 경기 둔화론이 다시 고개를 들춘 것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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