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순안공항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마주잡는 광경은 아무리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다. 뭉클해진 가슴은 이제 김대중 대통령이 2박3일의 방북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15일을 정점으로 하여 하나씩 열매가 맺어지는 단계로 승화될 것이다. 그 맺어지게 될 열매 가운데 하나가 정보기술(IT) 분야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이런 기대가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도 두 정상의 만남으로 촉발된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IT분야의 도움을 받아 더욱 앞당겨지고 굳건해질 수 있다는 기술적·과학적 믿음에서다. 어디 그뿐인가. 나아가 IT는 디지털시대, 우리 민족의 세계적 웅비를 뒷받침해줄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IT교류가 당위성 차원을 넘어 그 어떤 분야보다 앞선 순위가 돼야 한다는 점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남북간 IT교류는 지난 92년에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우편·정보통신 교류 및 통신비밀 보장」 조항(제20조)을 발판으로 물꼬가 트였다. 이를 근거로 94년에 중국에서 민간차원의 「코리안 컴퓨터 처리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는가 하면 96년에는 「경수로사업 이행을 위한 통신관련 의정서」가 발효돼 교류의 범위는 컴퓨터에서 무궁화위성을 이용한 공동망 구축 방안으로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경수로 부문을 제외하면 IT교류는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쳐 아직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현실의 벽이 이념이나 정치적 이유에서라기보다는 기술의 차이, 구체적으로는 표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쪽의 워드프로세서를 남쪽의 컴퓨터에서 실행시키는 경우를 상정해 보자. 우선 문자 처리방식과 자판배열이 서로 달라 호환성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베이스 분야도 한글(조선글)의 자모 배열이 달라 처리에 애를 먹게 될 것이다. 인터넷 역시 유사한 문제점이 나타나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IT분야의 이질성 해소는 이제까지 세계적인 기술흐름이 그래왔듯 체제와 민족이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IT는 기술의 공유를 통해 이질성을 해소하고 표준을 이루며 나아가 더 큰 발전을 꾀해나간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단일민족임을 전세계에 과시한 지금, 현실의 벽을 논하며 주저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남북간 IT분야 표준화를 위해 「IT교류 3단계 방안」을 제시코자 한다. 첫번째는 IT표준화 방향을 이끌 남북공동기구를 출범시켜 논의를 본격화하고 두번째는 현재 남북의 모든 IT시스템에 남과 북의 표준을 각각 병행 지원함으로써 이질성을 최소화하는 단계다. 평양프로그람쎈타가 최근 개발한 윈도용 워드프로세서 「단군」에 남측의 KS코드가 병행 지원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남북이 공동개발한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보급하는 단계다. 물론 이 단계에서 표준화가 완전히 이뤄질 필요는 없다. 공동개발이 이뤄진다면 표준화는 시간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IT교류 3단계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의 책임있는 당사자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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