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변화되고 있는 모토로라랩

무선통신부문 강자인 모토로라가 연구 조직체계가 크게 변화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해도 휴대전화나 페이저 무선기기, 시스템 등 분야별로 독립적인 연구조직을 운영돼왔으나 이제 각 사업부문별로 독립돼 운영되던 연구조직을 1명의 책임자가 총괄하는 통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리포팅 채널 통합은 끝냈으며 미국·일본 등 주요 지역에 설치된 12개 랩 가운데 머리인 시카고 모토로라랩의 경우 물리적인 통합에 들어가 향후 1∼2년 안에 시카고 인근 연구조직들이 이곳에 모두 통합돼 운영된다.

모토로라는 연구개발에 미래를 걸고 있는 회사다. 따라서 매년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비용이 매출의 10% 선에 이른다. 이 회사는 99년에만 35억 달러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자했다. 모토로라가 전세계를 상대로 매년 30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기술적으로 앞서 있는 연구 부문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 이를 적기에 상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R&D 부문인 모토로라랩은 이 회사의 존재 가치를 분명하게 하는 핵심조직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토로라랩의 통합 배경은 비교적 단순하다. 인력자원을 재분배하고 최적화시키겠다는 것이다. 통합 이전 모토로라랩은 무선통신 부문 연구인력의 다수가 페이저에 집중돼 있었다. 휴대전화 시장에 앞서 페이저 시장이 먼저 확대됐고 모토로라도 이 부문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선통신 시장 구조가 휴대전화 부문으로 바뀌면서 페이저 연구인력은 남고 휴대전화 연구인력이 부족해지는 불균형이 나타났다. 따라서 인력의 재배치가 불가피하게 된 것인데 과거의 사업부별 독립 연구조직 체제하에서는 문제가 복잡했다. 이 때문에 1인 총괄체제를 하나의 조직으로 변화시켜 조직의 인적 교류를 효율화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에는 무선통신과 인터넷, 컴퓨터의 통합 추세도 크게 작용했다. 독립적인 연구만으로는 기기나 시스템 통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변경된 조직체계는 중복 투자를 줄일 수 있게 하고 개별조직이 갖고 있던 연구 결과나 과정을 공유해 같은 기반에서 작업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또 새로운 과제가 대두돼도 정보의 집중 효율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토로라랩은 조직 재편과 함께 새로운 비전도 마련해 놓고 있다. 업무수행 기초기술을 다지고 생존할 수 있는 핵심기술을 개발한 뒤 독자적이고 차별화된 기술 개발을 이뤄 미래에 대한 도전, 즉 「그랜드 챌린지」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체제의 변화가 시작된 지난해부터 연구과제도 새롭게 설정했다. 모토로라랩이 내세우는 7대 과제는 소프트웨어 라디오, 광대역 통신, 디지털 DNA시스템 설계, 소프트웨어 툴, 인터넷 프로토콜, 휴먼인터페이스기술, 5-9시스템 신뢰성 등이다. 소프트웨어 라디오는 소프트웨어 하나를 장착해 차세대 휴대전화인 IMT2000은 물론 아날로그, 디지털 휴대전화를 모두 수용할 수 있게 한다는 프로젝트다. 또 5-9시스템 신뢰성은 99.999%의 신뢰성을 의미하는 것. 예를 들면 휴대전화의 신뢰성을 1년에 5분 이상 결함으로 인한 통화불능상태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7개 과제의 공통점은 모토로라가 최근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인터넷 사업과 관계가 깊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이미 랩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웹브라우저가 들어있는 단말기 스타택을 스프린트에 공급, 미국에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는 자사 모든 단말기에 소프트웨어를 탑재시켜 어느 단말기로든 인터넷에 접속,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IMT2000으로 불리는 차세대 단말기도 개발이 진행중인데 이미 데모제품을 만들어 랩을 찾는 이들을 상대로 시연을 하고 있다. 인터넷접속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 영상전화기의 역할까지 하는 이 전화기는 3세대 전화기라는 점에서 G3로 부르고 있다. 무선 인터넷 분야의 강자가 되기 위한 노력은 루슨트나 선은 물론 경쟁사인 시스코와도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7대 과제와 함께 설정해 놓은 관심 분야도 관심을 끈다. M램과 연료전지, 적층 세라믹IC 등 구체적인 제품 개발이 포함돼 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개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수년내 실용화를 앞둔 것들도 적지 않다. M램의 경우 플래시메모리 처럼 컴퓨터를 껏다가 켜도 내용이 지워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반도체다. 그러나 플래시메모리의 처리속도 초당 150㎜보다 1만배 빠른 초당 15나노의 속도로 처리해 작동중에 내용을 불러내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연료전지도 1∼2년 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모토로라가 개발중인 메탄올 전지는 잉크 카트리지 타입으로 한 번 충전으로 한 달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제품이다. 이 전지가 상용화될 경우 휴대전화 디자인에도 상당한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모토로라랩의 강점은 미래에 대한 대비에 소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랩에서 연구하는 것이 무선통신 단말기나 시스템, 관련 부품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카고 모토로라랩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생명공학이 IT 산업 이상으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시카고=박주용 논설위원 jy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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