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백치들」

95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중심으로 한 「도그마 선언」에 입각해 만들어진 영화로 98년 칸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 도그마 선언은 지금까지 영화의 발전이라 칭송되어 왔던 모든 테크놀로지와 작가주의를 전면 부정하며 영화의 순수주의를 부르짖는다. 「백치들」은 그러한 도그마 선언의 최전선에 놓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지닌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면에서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킹덤」 등으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차기작이 3대의 비디오 카메라와 자연조명이라는 「엄격한 규칙」을 실천에 옮긴 작품이라는 점은 영화광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요소다. 「영화에 대한 모든 통제를 없앤다」는 도그마의 원칙은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영화 보기의 즐거운 규칙이 되어 긴장감을 전해준다. 「백치들」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기존 사회의 규범에 대한 일종의 반항과 저항의 영화다. 감독은 도시 근교의 빈 전원주택에서 함께 기거하며 세상을 상대로 바보짓을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상적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소통의 창구를 제안한다.

아이를 잃고 상심한 카렌은 아이의 장례식 전날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바보짓을 하던 스토퍼 일행을 만난다. 스토퍼의 행동에 연민을 느끼고 그의 손에 이끌려 택시를 함께 탄 카렌은 이들의 백치행위가 의도된 게임이었음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이들 그룹과 함께 기거하면서 점차 마음의 위안을 받고 그들의 생활에 합류하게 된다. 의사와 미술교사 등 그룹내의 멤버들은 각자의 개성대로 백치행위에 몰두하며 파티에서 스토퍼의 제안에 따라 정말 바보의 입장이 되어 난교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룹의 일원이었던 조세핀이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탈퇴를 하게 되자 백치그룹은 새로운 분열을 맞기 시작한다. 스토퍼는 자신들의 행동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 앞에서의 백치행위를 제안하지만 멤버들은 하나 둘 실패하고 만다. 그룹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이들을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카렌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시도하겠다고 선언하며 가족을 찾아간다. 가족은 행방을 감추었던 카렌의 출연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만 가족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진실된 백치행위를 성공적으로 보여준다.

난교 파티에서 드러나는 행위의 사실감으로 인해 「백치들」은 의도되지 않은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적나라하게 진행되는 이 장면은 흔들리는 카메라와 함께 바보들의 섹스를 에로틱하기보다는 슬프고 처연하게 그려낸다. 「백치들」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보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더 크다. 적은 예산 속에서 영화라는 부산물을 얻는다는 것은 영화 만들기의 혁명과 같은 것이며 국내에도 그 조짐의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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