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국내 대학의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튼튼히 하기 위해 도입된 우수연구센터제도가 10년째를 맞고 있다. 정부가 열악한 대학의 연구분야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난 90년부터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센터는 센터지정이 종료된 30곳을 포함해 모두 60곳으로 지금까지 총 6000억원 가량 투입됐다. 그러나 우수연구센터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심사를 둘러싼 논란과 불만의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우수연구센터의 선정과 예산은 「먼저 따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로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우수연구센터 10년을 맞아 6회에 걸쳐 그동안의 성과를 평가해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대학의 열악한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90년부터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한 우수연구센터사업은 매년 선정과정에서부터 잡음이 일고 있지만 사회 인식과 구조적인 틀을 개혁하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선정과정을 둘러싸고 불만의 소리가 새어나오고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의 평가기준과 배점이 알려지기를 꺼려한다. 혈연과 지연·학연이 뒤엉킨 한국적인 풍토에서 선배·동료·후배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소외되거나 매장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우수연구센터 선정에서 탈락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지만 무엇보다 공정한 선정과정이 아쉽다. 선정과정의 불만에 대해 기자회견이라도 갖고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고 싶지만 그 이후의 대안이 없어 그냥 참기로 했다. 나 혼자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딜레마에 빠져 괴롭다는 모대학 P교수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썩을대로 썩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수연구센터 선정 심사를 맡았던 위원들의 고충 또한 만만치 않다.
K심사위원의 말. 『국내 연구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국의 과학자를 초빙해서 심사할 수는 없지 않느냐. 객관적인 심사를 한답시고 과제제출자의 이름을 가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믿고 맡겼으면 끝까지 믿어달라. 일부 편파적인 위원이 있을지는 몰라도 모두를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부분은 양심에 따라 심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선정과정을 비방하는 데는 참을 수 없다. 이래가지고 심사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심사위원의 자리에 올라설텐데 그땐 뭐라고 할 것인가.』
우수연구센터제도가 선정과정에서부터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또다른 주장은 연구비 재분배가 일부 특정 대학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센터의 역량보다는 학교의 이름이나 위세에 따라 선정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혁신적인 대안마련 없이는 풀리지 않는 과제임에 틀림없다. 재정부족으로 전폭적인 연구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대학은 마냥 제자리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건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질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여건을 다소 갖추지 못했더라도 정부가 연구비 재분배 차원에서 배정한다면 또다른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은 당연하다.
올해까지 우수연구센터를 졸업한 기관은 지금까지 선정된 61곳 중 31곳이다. 중간평가에서 유일하게 중도탈락한 광전자연구센터를 제외한 30곳의 가시적인 성과인 논문게재 수는 국내외를 포함해 2만6000여건에 달한다. 특허출원도 국내외 1700여건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대학의 우수한 인력과 연구능력을 활용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우수연구센터를 배출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지원한 결과가 논문·특허출원 등으로 만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본래 의도라면 6000억원 이상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은 연구비로 10년이 경과한 지금쯤에는 외국 교수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들 만한 국제적으로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갖춘 대학의 우수연구센터가 몇개쯤은 배출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대학의 우수연구센터는 이런 기대를 저버리게 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과학기술계는 이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한번 지정되면 10년간은 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에는 중간평가를 실시해 다소 엄격한 재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간에 자격을 박탈하면 사회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수연구센터로 지정돼 연구비를 받고 있는 일부 대학교수들조차 이렇게 대답할 정도다.
우리나라 정부의 연구개발사업의 태반이 그렇듯 우수연구센터도 씨를 뿌려놓고는 책임지고 이를 거둬들이는 노력이 없다.
물론 우수연구센터의 육성으로 많은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해낸 공과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기술계는 물론 우수연구센터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조차 10년이 지난 만큼 정부가 끌고다니는 연구개발행정보다는 옥석을 가려내는 대개혁을 단행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주공산」.
이것이 시행 10년을 지낸 안타까운 우수연구센터의 발자취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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