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02) 벤처기업

IMF<20>

나는 지하실에 있는 커피숍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회사를 떠나던 날 그가 사장실에 들러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그는 괜찮다고 하면서 체념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지내시오.』

『그냥 소일하고 있지요. 뭐.』

『눈치를 보니 집에는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얼마전에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를 낳아요? 함 과장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아기를 낳아요?』

『아기를 내가 낳나요, 집사람이 낳지. 집사람은 나보다 열 살 어리잖아요. 아들만 셋이어서 딸 하나 더 얻으려고 했는데 또 아들이죠.』

『그럼 넷째 아들을 얻은 것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딸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 힘들어 아이를 분만하고 이제 막 퇴원을 했는데 내가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하면… 아침마다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쪽 회사 부근으로는 안 오려고 했는데 오늘 어쩌다가 발길이 이쪽으로 옮겨져서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꼴을 보여서.』

『아니. 미안한 것은 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다른 데 일자리를 알아보세요. 그래도 안되면, 우리 회사 형편이 좀 풀리면 다시 오세요.』

『다시 불러주시겠습니까?』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죄를 지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목이 메었다.

『그럼요. 다시 부르죠. 이 어려움이 극복될 것입니다.』

『제발 불러주십시오. 난 사실 갈 데가 없어요. 내가 무슨 학력이 있나, 경력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전자회사 연구실에서 찾는 기술자는 모두 박사이거나, 명문 대학을 나온 젊은애들이죠. 나같은 사람은 퇴물로 치우기에 바쁘죠. 그래서 이번에 치워졌지만.』

『꼭 그래서는 아닙니다. 이번 일은 나도 매우 유감입니다. 이렇게까지 안해도 될 것 같은 생각도 드는데, 돈을 빌려주는 은행에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마치 저들이 IMF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그를 붙들고 소리내어 울고싶은 충동을 억지로 삼켰다. 그와 헤어져 이발소에 들어가서도 나는 한동안 목이 메어서 감정을 삭이느라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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