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영국 디지털 방송의 현황과 전망

디지털 기술은 최근 전세계 방송계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디지털 방송은 우선 채널의 숫자가 수백 개에 달해 시청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채널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TV 시청자들은 또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단순히 시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 반영할 수도 있다. 방송국과 시청자 사이에 양방향 통신을 하는 이른바 인터액티브 방송(Interactive Broadcasting)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회사인 언더스탠딩 앤드 솔루션스(http://www.undansol.co.uk)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TV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영국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한 보고서 「영국 디지털 방송의 현황과 전망」을 펴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언더스탠딩 앤드 솔루션스는 지난 87년 영국에서 설립됐으며 전세계 정보가전, 방송, 통신, 음악, 비디오, 저장 매체, 광디스크 등의 시장 동향 및 경영 컨설팅 분야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보고서 내용을 간략히 정리·소개한다. 편집자

영국 TV업계는 지난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우선 영국의 대표적인 위성방송 채널인 「B스카이B」와 지상파 디지털 방송 라이벌인 「온디지털」 간에 시청료 인하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유료 가입자 숫자가 98년 25만 가구에서 99년 말 현재 270만으로, 불과 1년여 동안에 10배 이상 늘어났다.

언더스탠딩 앤드 솔루션스(http://www.undansol.co.uk)사는 2000년 말까지 유료 가입 가구 숫자가 또 다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해, 전체 영국 가구의 10%를 넘어서는 데 이어 가까운 장래에 경쟁 상대인 미국과 프랑스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영국 디지털TV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B스카이B는 98년 10월 디지털 서비스를 시작한 후 99년 5월까지 세트톱 박스와 소형 위성 수신기가 모두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해 봄부터 1년 동안 가입하는 고객에게 세트톱 박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발표(지상파 디지털 방송사업자 온디지털사도 며칠 뒤 비슷한 발표가 있었다) 덕분이었다.

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 때문에 B스카이B에 가입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비용은 소형 수신기 설치비 40파운드(UK 40)뿐이었다. 온디지털(http://www.ondigital.co.uk)도 옥상에 안테나를 설치할 만한 공간만 갖추면 누구에게나 수신기를 무료로 설치해 주고 있다. 현재까지는 B스카이B가 온디지털을 4 대 1 정도 앞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B스카이B 디지털 고객 중 다수가 아날로그 서비스 가입자였다. B스카이B는 아날로그 가입자들에게 편지, 방송 프로그램 안내 잡지 및 여러 형태의 인쇄물과 홍보 방송 광고 등을 통해 디지털 서비스로 업그레이드하도록 집요하게 설득했다. 또 새 접시 안테나를 설치하는 비용 외에는 서비스 가격에 아무 차이가 없는 데다가 디지털 서비스는 각 프로그램 패키지에 몇 개 부가 채널을 제공했다.

둘째, 온디지털의 전송망이 아직 영국을 100% 커버하지 못하고 있고, 수신 지역 또한 고르지 못해 같은 거리에서도 한쪽은 수신이 되고 다른 한쪽은 수신이 되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등 방송 서비스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셋째, B스카이B가 훨씬 다양한 비디오 채널을 제공했다. 온디지털이 28개의 채널밖에 확보하지 못한 반면 B스카이B 방송은 그 숫자가 무려 140개나 됐다. 또 B스카이B 서비스는 최신 영화를 제공하는, 이른바 주문형비디오(VOD)와 다름없는 프로그램을 매 15분마다 내보내는 유료 채널(Pay-Per-View)을 제공하는 데 비해 온디지털은 아직 충분한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 기지 특기할 만한 점은 두 영국 디지털 방송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 중에 서로 중복되는 것도 많다는 점이다. 영국 방송법은 B스카이가 경쟁회사인 온디지털에 자사의 일반 오락 채널인 「스카이 원」을 비롯해 세 개의 영화 채널 중 두 개 채널과 세 개의 프리미엄 스포츠 채널에서 동일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음악전문 방송으로 유명한 「MTV」와 만화방송인 「카툰 네트워크」,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와 ITV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UK골드」 등과 같은 프로그램도 B스카이B와 온디지털에서 동시에 제공된다.

또 B스카이B와 온디지털에 가입하면 이들 방송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 외에도 BBC의 전국 두 개의 아날로그 지상파 채널, 세 개의 무료 디지털 전용 방송, 채널 4와 채널 5까지 모두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국 상업 TV 네트워크인 「ITV」와 두 번째 디지털 전용 방송인 「ITV2」는 온디지털 방송 가입자만 시청할 수 있다(사실 온디지털은 ITV에 참여하고 있는 칼턴과 그라나다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이에 따라 몇몇 TV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은 최근 통합 디지털 디코더를 내장한 TV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이 텔레비전만 구입하면 이들 두 방송에 가입하지 않아도 다양한 디지털 TV 프로그램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디지털 디코더를 내장한 TV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디지털 방송을 공짜로 시청하기 위해 TV를 새로 구입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디지털 TV를 1년 동안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동 전화 업계가 최근 잇따라 내놓고 있는 「공짜 마케팅」 전략과 비슷한 점이 많다. 시청자는 디코더를 내장한 TV와 1년 무료 서비스 패키지에 가입하고 1년 후, 원하는 경우에는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중간에 해약(churn)하는 위험 부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처음 12개월 후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고객의 비율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

온디지털의 지상파 디지털 서비스 가입자 숫자는 50만여명에 그쳐, 200만 명에 달하는 B스카이B와 비교하면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더스탠딩 앤드 솔루션스는 최근 하드웨어 제조업체에 대한 온디지털의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 덕분에 온디지털의 가입자가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판매중인 디코더 내장 TV는 대부분 B스카이B보다는 온디지털 방송을 청취하기 위한 것이다.

B스카이B 디지털 서비스의 두 번째 수입원은 최근 영국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전자상거래다. 지난해 10월 이 회사의 자회사인 「브리티시 인터액티브 방송(BIB http://www.bib.co.uk)」은 「오픈(Open)」이라는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이 방송 가입자들은 최근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있다.

B스카이B 세트톱 박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조건 중 하나는 가입자가 세트톱 박스에 내장된 모뎀에 전화선을 연결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BIB에 전화로 연결하고 방송 사업자와 시청자간의 양방향 연결이 가능해지면, 시청자는 세트톱 박스에 연결된 키보드를 사용해 오픈의 호스트 컴퓨터와 통신할 수 있다.

오픈에 자사 제품을 내놓은 업체 중에서 이동전화 단말기를 판매하는 카폰웨어하우스(Carphone Warehouse)의 경우 지난해 9월 이후 자사의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 매출이 400%나 늘어났다. 특히 오픈을 통한 문의는 같은 기간 동안 800%나 늘어나, 회사 직원들도 놀랐다고 말한다.

오픈이 최근 공개한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월을 전후해 1주일 평균 매출액이 100만 파운드(UK 1M)를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전자상거래를 시작한 후 지난 12월 말까지 이 회사 시스템에 접속한 회수는 800만회를 기록했고 이 중에 12만 5000여 명이 물건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온디지털은 계속 양방향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해왔고 현재 이 회사의 모든 세트톱박스에는 모뎀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유료채널 서비스가 곧 개시할 것이라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현재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는 전자우편이 유일하며 아직까지는 양방향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기나 구현 방법에 관한 발표도 없는 상황이다.

언더스탠딩 앤드 솔루션스는 영국에서 몇 년 이내에 디지털 TV 보급이 크게 늘어나 2002년 초에는 전체 영국 가정의 5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이들 중에, 시청한 프로그램 숫자에 따라 시청료를 내는 「페이(Pay)TV」를 시청하는 비율이 96%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숙련된 기술자의 부족으로 B스카이B 설치가 지연되고 있고 또 소비자 인지도도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이것이 영국 디지털 TV 성장에 위협 요소가 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예상 수요에 비해 하드웨어 공급 부족이 우려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막대한 이동전화 판매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메모리칩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 결과 디지털 세트톱 박스 업체들이 주문에 필요한 충분한 부품을 조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언더스탠딩 앤드 솔루션스는 이 부품 수급 문제만 해결된다면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이 강력한 방송 매체가 가지고 있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의 디지털 TV 산업의 밝은 미래가 열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정리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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