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새로운 86계 마이크로프로세서 「크루소(Crusoe)」가 베일을 벗었다. 소비전력이 극히 작아 1.5W로도 MPEG2 동영상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86계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소비전력이 크다」는 기존 관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크루소의 탄생에 대해 PC와 마이크로프로세서 관련기술자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제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반응 일색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크루소의 설계방향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고성능화」에서 「저소비전력화」로 바뀌는 시류를 대변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성능 향상만을 지향, 동작주파수가 1㎓, 1.5㎓ 등으로 거침없이 높아져왔다. 이에 편승해 새로운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SW)가 나오고, 그 결과 PC 시장도 확대됐다.
그런데 동작주파수가 500㎒에 도달한 지난해부터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500㎒ 제품이면 SW로 MPEG2 동영상을 처리할 수 있고 문서작성·표계산 등 웬만한 애플리케이션 SW도 무난히 소화한다. 이 정도면 성능을 더이상 향상할 필요성이 별로 없게 되고, 동작주파수 향상이 PC 시장 확대로 이어지기도 힘들게 됐다. 이 때문에 기기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포스트PC」를 겨냥한 정보기기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선인터넷이 21세기 유망분야로 떠오르면서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 정보기기의 필요성이 높아지지고 있다. 그 결과 자연 저소비전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가 「고성능」 위주에서 저소비전력 지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국제고체소자회로회의(ISSCC)」에서 그대로 나타나 최대 관심사였던 1㎓ 마이크로프로세서 못지않게 1W당 1000MIPS의 높은 연산성능을 실현한 저소비전력 관련 기술도 대거 나왔다.
소비전력 1W당 1000밉스의 연산성능을 실현하는 데 각 업체가 채택한 기술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회로 규모를 억제하면서 사이클당 실행하는 명령의 평균수(인스트럭션 퍼 사이클:IPC)를 높이는 기술. IPC가 높아지면 더욱 낮은 동작주파수에서 같은 연산능력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소비전력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회로규모를 억제하면서 IPC 향상을 도모하는 마이크로아키텍처(내부구조)는 크게 두 종류다.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처리를 하나의 명령으로 정리한, 128비트 정도의 명령을 실행하는 「VLIW(Very Long Instruction Word)」 구조와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CPU 코어를 여러개 집적한 「멀티프로세서 온 칩」 구조다.
전자는 예를 들면 크루소 개발업체인 미국 트랜스미터와 일본 후지쯔연구소 등이, 후자는 NEC가 각각 채택하고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크루소에 채택된 VLIW로 하드웨어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RISC형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경우 명령 실행순서를 제어하는 하드웨어가 필요한 데 비해 VLIW형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이같은 번잡한 처리를 SW에 맡기기 때문에 회로규모를 줄일 수 있고 그 결과로 소비전력도 낮출 수 있다.
사실 마이크로프로세서 회로를 단순화하려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CISC형에서 RISC형으로 이행했을 때도 하드웨어 단순화를 꾀했는데 당시는 내부구조를 단순화하는 방법으로 동작주파수를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때도 물론 결과적으로 소비전력이 낮아져 예를 들면, 17밉스의 성능을 얻는 데 필요한 CISC형 마이크로프로세서 「i486」의 경우 소비전력이 5W인 데 비해 RISC형인 「R3000」은 1.5W 이하였다.
VLIW기술은 RISC형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하드웨어가 복잡한 데 따른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크루소 칩의 경우 회로규모가 펜티엄Ⅲ의 절반 정도의 회로 규모에서 동등한 성능을 실현했다. 소비전력도 펜티엄Ⅲ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VLIW 구조를 채택하는 후지쯔연구소의 경우는 700밉스의 정수연산성능과 1.4기가플롭스의 부동소수점 연산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소비전력을 3W로 억제한 마이크로프로세서 「FR-V」를 실현했다. 동작주파수는 350㎒고, 전원전압은 +1.8V다.
회로규모 억제와 함께 저소비전력화를 꾀할 수 있는 기술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전원전압을 세밀하게 제어하는 방법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소비전력은 전원전압의 2제곱에 비례하는데 이 전원전압을 낮춰 소비전력을 낮추는 기법이다.
그렇지만 전원전압은 아무렇게나 낮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표로 하는 연산성능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텔의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스트롱암」의 경우 전원전압을 +0.75V로도 동작시킬 수 있지만 그때 동작주파수는 150㎒가 된다. 700㎒의 동작주파수를 얻기 위해서는 +1.3V의 전원전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용상황에 따라서 전원전압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같은 연구는 이미 PC용에서는 시작됐는데, 예를 들면 AC전원의 접속상태에 따라 동작전압을 바꾸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인텔이 모바일펜티엄Ⅲ에 채택한 「스피드스텝」 기능으로 AC전원에 연결한 상태에서는 전원전압 +1.6V에 동작주파수가 650㎒고, AC전원을 제거했을 때는 동작주파수를 500㎒로 해 전원전압을 +1.35V로 낮춘다. 650㎒ 동작시 소비전력은 표준으로 9.1W지만 500㎒ 동작시는 표준 5.1W로 낮출 수 있다.
「1W당 1000밉스」 달성을 위해서 주목되는 것은 AC전원 조절 기법을 더욱 향상해 프로그램 실행상황에 따라서 다단계로 전압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높은 연산성능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는 동작주파수를 높이기 위해 전원전압을 올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동작주파수를 낮게 설정해 전원전압을 내리는 것이다.
프로그램 실행상황에 따라서 전원전압을 제어하는 방법은 주로 세 가지다. 우선 프로그램 실행에 필요한 최소 동작주파수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서 전원전압을 동적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크루소 개발업체 트랜스미터가 채택하고 있다.
트랜지스터의 초기 게이트전압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는데 히타치제작소가 채택하고 있다. 전원전압 변화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는 문제를 초기 게이트전압에 변화를 줘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밖에 칩 내부를 블록으로 분할해 그 단위로 전원전압 공급을 제어하는 방법이 있는데 특정 블록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전력공급이 차단된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박스2-<트랜스미터의 크루소 해부>
트랜스미터가 개발한 86계 호환 마이크로프로세서 「크루소」에 대한 PC업체 기술자, 반도체 설계자들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크루소가 지금까지 나온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징은 기존 86계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능을 VLIW구조의 CPU 코어와 「코드 모핑 SW」라는 전용 SW 결합으로 실현한 것에 있다.
코드 모핑 SW는 명령세트와 마이크로아키텍스(내부구조)의 의존관계를 단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명령세트를 하나의 CPU 코어로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코드 모핑 SW는 프로그램 실행중 86계 명령을 VLIW로 변환한다. 이 때문에 기존 86계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비해 실행단계의 파이프라인 제어회로를 간소화할 수 있다. 이밖에도 코드 모핑 SW는 기존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는 복잡한 회로를 사용해 처리하는 명령스케줄링 같은 작업을 실행한다.
이 결과로 크루소 회로 규모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텔 펜티엄Ⅲ프로세서의 경우 논리회로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 수가 550만개 정도인 데 비해 크루소는 280만개로 적어 인텔의 MMX 명령부착 펜티엄프로세서와 거의 비슷하다.
또 코드 모핑 SW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다른 명령세트로 기술한 SW를 크루소로 실행할 수도 있다. 즉 특정 명령세트에 의존하지 않는 SW 실행환경을 구현하는 것이다.
코드 모핑 SW의 역할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자바 바이트코드를 실행하기 위해 개발한 「핫스폿」이라는 SW와 유사하다. 핫스폿은 프로그램 실행상황을 감시하고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바이트코드를 추출해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직접 실행할 수 있는 명령으로 변환한다.
사실 코드 모핑 SW나 핫스폿과 같은 SW가 실용화할 수 있게 된 것은 86계 명령이나 바이트코드를 일일이 변환해도 프로그램 실행에 필요한 연산성능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마이크로프로세서 성능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크루소에 대해 기술자들은 대체로 『그런대로 무난한 연산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제품 탑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크루소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예를 들면 애플리케이션 SW를 최적의 상태로 동작시키기 위해서 코드 모핑 SW 실행과, 변환 후의 VLIW명령을 보관하기 위해 8MB-16MB의 메모리 용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86계 명령으로 기술한 프로그램을 축적할 수 있는 메모리 공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크루소는 64MB나 128MB의 주기억 메모리를 탑재하는 PC나 특정용도 휴대단말기에 먼저 채택되고 주기억 용량이 몇 MB로 작은 휴대형 정보기기 등에 활용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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