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투데이>실리콘밸리 어제 오늘 내일13회-자리잡는 GUI, 그리고 윈도

1983년 컴퓨터 업계는 코딩 운용체계인 DOS에서 벗어나 그래픽 사용자 환경의 GUI로 전환하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섰던 것은 애플컴퓨터사였다. 이미 애플은 GUI가 탑재된 리사와 매킨토시(1984)를 통해 그래픽 전문 컴퓨터라는 이미지를 굳혀 가고 있었고 IBM은 자체 개발중인 탑 뷰(Top View)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애플의 리사와 매킨토시의 성공을 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은 GUI가 앞으로의 차세대 운용체계가 될 것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1983년 11월10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1984년 4월 윈도의 발매를 선언한다.

같은 해 게이츠는 윈도의 영상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IBM 경영진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자사 탑 뷰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IBM은 81년 MS-DOS를 개발할 때처럼 성원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게이츠는 자신이 개발하고 있던 윈도가 IBM 탑 뷰의 경쟁상대라는 것만을 깨닫게 된다.

탑 뷰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하고 있던 윈도는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GUI와 애플의 매킨토시 운용체계와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었다. DOS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두 프로그램은 단순히 디렉터리 트리를 그래픽으로 정리해주는 프로그램 매니저라는 게 더 정확하다.

이를 간과한 게이츠는 윈도시스템의 개발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다시피 해야만 했다. 그리고 1985년 11월 20일 약속보다 1년 6개월이나 지난 뒤 윈도를 출시하게 된다.

처음 출시된 윈도는 많은 결점들을 안고 있었다. 우선 처리속도가 기존 매킨토시 운용체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고 하나의 응용 프로그램 외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열 수가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매킨토시를 자동식(오토매틱) 자동차로 윈도를 수동식 자동차로 빗댈 정도였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출시를 앞둔 윈도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애플의 법정소송 협박이었다. 1985년 9월 애플은 윈도가 매킨토시의 많은 부분들과 흡사하다며 비밀이 새어나갔을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제품 출시여부 자체에 위협을 느낀 게이츠와 고문 빌 뉴콤은 라이선싱 합의를 제의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애플은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는 애플의 커다란 실수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가 애플에 라이선스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하는 전제품에 있어 애플 기능 사용허가를 내놓았던 것이다. 애플은 합의를 했고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애플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을 개방해 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게이츠의 대 애플 전략은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로부터 QDOS의 판권을 소유한 것과 IBM을 설득해 MS-DOS에 대한 판권을 가진 것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시 후 윈도 1.0은 1987년 1월 알더스 페이지메이커 1.0이 출시되기 전까지는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 한 채 표류를 거듭했다. 페이지메이커 1.0은 PC를 위해 처음으로 나온 위지위그(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의 머릿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화면에 표시된 대로 종이에 출력하는 기능) 데스트톱 출판 프로그램으로 이는 PC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같은 해 말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늘날 거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엑셀과 워드를 내놓아 자사의 기반을 닦게 된다.

그러면 IBM이 개발했던 탑 뷰는 어떻게 됐을까. 이 제품은 1985년 2월 윈도보다 빨리 출시되기는 했었다. 그러나 GUI기능은 아직까지 들어 있지 않았고 다음 버전에 장착될 것으로 약속됐었다. 결국 IBM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2년 뒤 이 제품을 절판해버리고 만다.<테리리기자 terry@ibiz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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