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버전<42>
하얼빈은 크게 세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두 블록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오륙십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고, 최근에 건축 붐이 불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에 세 블록으로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 하얼빈에는 전통적인 중국 가옥이나 재래식 시장을 형성하는 곳이 있다. 그리고 러시아 도시를 방불케 하는 러시아식 건물과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 곳이 있다. 오륙십년 전에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신시가지는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와서 건물을 짓고 거주한 곳이었다. 그 후에 일본이 점령을 하여 그들의 주거지로 삼았다.
나는 만토집단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신시가지의 화원 소학교에 갔다. 그곳은 지금 초등학교에 불과했지만 오륙십년 전에는 일본 영사관이었던 자리였다. 그곳의 지하실은 현재 여관으로 경영되고 있었으나 당시는 감옥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안중근이 체포되어 이곳에 감금되었다고 하였다. 그 후에 이곳은 일본 헌병대에서 접수해서 제731부대 중간 기착지로 사용했다. 마루타를 임시로 가두어 둔 곳도 바로 그 지하실이었다.
그 지하실은 일부를 여관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일부는 문에 못질을 하여 아예 사람의 출입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만토집단 사람들이 성 문화국에 전화를 해서 그곳에서 사람이 나와 못질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로 이곳이 조선의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자리라고 합니다.』
성 문화국 사람은 나를 안쪽으로 안내해서 들어가더니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곳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토막 방이었는데, 입구를 가로지른 창살이 뜯겨 나갔으나 한때는 감옥으로 사용했던 자리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일본 헌병대에서 사용하면서 많은 독립지사들을 가두었던 곳이지요. 독립지사라면 조선 사람이나 중국 사람 마찬가지였지요.』
문화국의 직원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을씨년스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색깔이 바래고 흔적이 없었으나 벽에는 피가 묻어 있는 느낌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의 원혼이 서린 느낌을 받았다.
류 총재가 나를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하얼빈 시장과 간부들이 나왔다. 나는 흑룡강성 성장 만나기를 원했으나 그는 중앙정부의 총회 때문에 북경에 가서 한동안 하얼빈에 없었다. 그를 만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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