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프롤로그-절반의 실패, 출연연 구조조정
국가 연구개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출연연이 새 정부 들어 강력한 구조조정과 함께 연구회 체제로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국가 연구개발체제의 개편은 투자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도 있지만 연구개발 시너지효과를 높여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아왔다. 그러나 외형적인 개편보다는 내실있는 개혁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국가연구개발체제 개혁의 신호탄이기도 했던 연구회 출범 1년을 맞아 득과 실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시리즈의 순서
1.프롤로그
2.주인 없는 출연연
3.옥상 위의 연구회
4.연구회 실권이 없다.
5.출연연을 제자리로
6.연구회 어디로 가야 하나
7.에필로그
대덕연구단지내 출연연 연구원 K모 박사(41)는 요즘 고민이 많다. 업무량 폭주로 힘은 들고, 그렇다고 평생직장이 보장된 것도 아니기에 갈피를 못잡고 있다. 더욱이 연구원 창업으로 큰 돈을 손에 쥔 동료 연구원을 보며 최근 주식투자에 나섰으나 반토막이 나자 가정마저 흔들리고 있다.
또다른 연구원 L모 박사(36). 요즘 부는 벤처붐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다. 구조조정 이후 줄어든 연구비 때문에 외부 수탁연구과제를 수주하러 다녀야 하는 자신이 마치 연구소 영업사원이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연구소 분위기가 형편없어 떠날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나가서 마땅히 창업할 기술이 없어 더욱 막막하다. 다른 동료들이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기술 한두개 정도는 「감춰둔 채」 직장을 용기있게 그만두고 창업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오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해 애꿎은 담배만 줄로 피워대고 있다.
기초분야 선임연구원인 또다른 K모 박사(33)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에게서 평생직장이라는 신념은 깨진 지 이미 오래다.
프로젝트를 따내느라 올해도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지만 빛이 나지 않고 알아주는 간부나 직원들도 없다고 푸념한다. 지난해부터 연구소측이 경영혁신 등을 외치며 연구과제 보고서를 요구해 서류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정작 본업인 연구는 뒷전이다. 최근 들어서는 박사학위 받고 연구원의 길을 선택한 것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
정부가 지난해 요란하게 떠벌이며 출연연 구조조정을 시작한 이후 나타나는 출연연의 실상이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가. 대부분이 연구원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부 정부부처의 「탁상행정식」 구조조정이 낳은 역효과다.
구조조정을 통해 연구개발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연구실에 신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정부정책은 연구원들로부터 버림받은 지 오래다.
여기에 최근 벤처창업 바람이 불면서 실력있고 잘 나가는 연구원들을 붙들어두기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구조조정을 통해 규제가 풀리고 연구자율성이 보장되며 연구소 운영이 기관의 특성대로 운영되기는커녕 예산을 틀어쥔 정부당국에 의해 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가 심해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정부가 경영혁신 차원에서 밀어붙인 정년제 도입은 물론 연봉제, 기관장 공모제 등은 한마디로 실패작이라는 평가다.
또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연구과제중심운영(PBS)제도 연구효율을 극대화시키기보다는 「무슨 과제든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보따리 연구로 내몰고 있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경상비의 차등지원 등 불안정한 예산으로 PBS제도가 오히려 경쟁구도를 부추겼다는 것이 연구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여기에 출연연 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겠다며 출범시킨 연구회는 정작 권한이 없는 이상한 조직으로 변했다.
여전히 관계부처 고위공무원들이 당연직 이사로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한두명도 아니고 5명의 차관급 고위공무원이 이사로 포진해 있으니 출연연이 모처럼 의욕을 갖고 자율적으로 추진하려던 사업들이 이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되는 일이 없다.
이같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은 지난해 처음 도입한 기관장 공모제가 대표적 사례다. 외형상 후보추천위원회에서 기관장을 복수로 추천한 뒤 이사회에서 선임하는 2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추천위원의 선임권을 이사회가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총리실로 소속이 이관되고 연구회가 출범했지만 오히려 출연연을 감독하는 기관만 늘었다고 말한다.
연합이사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총리실은 물론 국가과학기술위원회·기획예산처·과학기술부 등 모셔야 하는 시어머니만 늘어 연구과제나 새로운 사업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말도 안통하는 공무원들을 찾아다니고 설득하느라 연구는 뒷전에 두고 프로젝트를 수주하느라 잠잘 시간도 없다는 푸념이다.
구조조정의 실패는 법제정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정부출연연 설립·육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출연연의 소관업무는 총리실 관할. 정부부처간의 다툼이 심해지다 보니 중립적인 입장인 총리실에 둬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다 보니 3∼4개 부처가 담당해온 출연연 업무를 총리실의 국장 한 사람이, 그것도 다른 업무와 겹쳐 담당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법제정 당시 총리실은 예산만 담당하고 모든 출연연 업무는 연구회에 맡긴다고 했지만 단돈 100원조차 예산배분권이 없는 연구회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 기관장은 『고도의 과학기술행정 노하우를 갖고 추진해야 할 출연연 정책이 비전문가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말하고 『총리실측도 비전문가인 자신들이 출연연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절반의 실패.」 이것이 출연연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과학기술계의 평가다.
과학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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