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공단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경제개발의 기치를 내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단위 전자공업단지 조성을 지시했다. 재일 지역 유지와 상공인들이 주축으로 단지를 유치하면서 구미공단의 신화는 시작됐다.
지역 유지인 장월상씨, 한국도시바를 세운 이 지역 출신 재일교포 곽태석씨, 한국폴리에스텔을 세운 이원만씨, 당시 경상북도지사 양택직씨, 윤성방적을 세운 서갑호씨 등이 단지 유치의 주역들이다.
공단이 박정희 전대통령의 고향 인근에 들어서자 당시부터 지금까지 특혜설이 끊이지 않으나 실제로는 특혜라고 보기 힘들었다. 구미는 내륙에 있어 전자부품에 치명적인 염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며 경부고속도로와 철도, 국도가 겹치는 교통의 요충지로 전자산업단지로서의 최적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구미읍을 중심으로 25㎞권 안의 인구가 60만명으로 인력확보도 쉽다는 장점도 있었다.
사람들은 구미공단이 모래땅 위에 선 공단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당시 자료를 보면 제1단지 부지의 80%는 전답이었고 10%가 야산, 나머지 10%만이 낙동강 유역과 하상이었다.
구태여 모래땅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자면 하상에 세워진 제3단지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구미공단이 들어선 다음의 일이다.
구미공단의 초기 생산제품은 흑백TV와 나일론 등 섬유제품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들어 컬러TV·반도체·브라운관·통신장비 등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TFT LCD, 이동전화, 디지털TV 등 첨단제품 생산기지로 변신하고 있다. 구미공단은 국내 전자산업의 산 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구미공단은 전자산업의 축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디지털과 관련한 연구개발 인력들은 대체로 수도권과 대전지역에 집중됐다. 인근에 금오공대나 경북대 등이 있으나 여기에서 배출되는 인력들도 중앙으로 향하고 있다. 구미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력수급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공단과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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