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2000>6회-구미공단

구미대교를 넘어 2단지에 들어서자 길 양쪽에 낯선 회사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현대전자, LG필립스LCD, 그리고 새한도레이.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없던 새 이름들이다.

지난해 이곳 기업에서 활발했던 구조조정과 외자유치를 일러주는 이들 간판을 새삼 쳐다보는 이는 외지인뿐이다. 공단 사람들은 왕복 6차선으로 넓혀진 그 앞길을 무심코 지나친다. 이곳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익숙해진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 조성중인 제4공단 입구 옥계동. 한 건설회사의 아파트단지 건설이 한창이다.

『구미는 주택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모자랍니다. 이곳 말고도 칠곡쪽 상모동, 선산쪽 도량동에도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중이에요. 경기가 살아나니까 아파트 건설도 활발해지네요.』 옥계동 단지 앞 가건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모씨(45)의 말이다.

IMF 이후 침체됐던 구미공단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내수와 수출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이곳의 생산과 수출이 급속도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중부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구미공단의 생산은 2조5800억원으로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9.5% 늘어났으며 수출도 15억달러로 43.2%가 증가했다. 가동률과 고용도 IMF 이전 수준까지 육박했다.

『예전만큼은 아니나 분위기는 좋아졌습니다. 수출과 내수의 견인차인 디스플레이와 통신기기사업의 호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부지역본부의 이승익 부장의 진단이다. IMF 당시 연간 50여개에 달했던 휴폐업업체 수도 지난해 말 이후 거의 없어졌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의 민심은 흉흉했다. 『구미공단을 통째로 광주로 옮긴다』 『모 가전업체가 군산으로 이전한다』 『전라도 사람이 뽑지 않으면 문을 닫는다』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카더라 통신」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 이같은 악성 유언비어는 자취를 감췄다. 구조조정도 마무리됐고 경기도 회복됐기 때문이다.

구미공단의 터줏대감격인 한국전기초자(대표 서두칠)는 지난해 회사 매각,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 라인 일시중단에 따른 생산차질에도 불구, 생매출액 18%, 경상이익 361%의 경영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최악의 경영환경에서 매출은 오히려 늘어났다. 올해에는 평면유리,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유리 등 신규사업에 대한 설비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는 이 회사의 최영호 상무는 『IMF가 오히려 보약이 됐다』면서 올해 사업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구미공단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변화는 생산제품으로 나타난다.

예전처럼 구미공단을 컬러TV와 같은 아날로그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주력 생산제품이 평면브라운관, TFT LCD, 이동전화, 모니터, 하드디스크(HDD), 디지털TV 등 첨단 디지털 제품으로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는 부품에서 세트까지 수직계열화가 잘 돼 있어 공단의 주력산업으로 떠올랐다. 이들 제품은 수출효자품목들이다. 수출공단으로 조성된 구미공단이 모처럼 제 구실을 하는 셈이다.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이곳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에 직면하고 있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인력을 대폭 줄였던 이곳 기업들은 경기가 급속도로 호전되자 사람 구하기에 나섰으나 채용할 사람들이 없다. 특히 연구개발 인력은 수요에 비해 크게 모자란다. 그 많던 인력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벤처기업 붐이 일면서 제조업체에 오려들지 않아요. 벌써 채용공고를 낸 지 두달이 넘었는데 응모하는 사람들이 없네요』 금오산 입구 형곡동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유상원 기민전자 사장(42)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호소한다.

구미공단의 또다른 현안은 제4단지의 조성 지연. 정부와 구미시는 옥계동·구포동·신당동 일대 174만평에 컴퓨터와 통신 등 첨단 업종을 유치해 구미를 디지털산업의 메카로 재도약시킬 게획이나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대통령이 참석해 이주단지에 대한 기공식까지 마쳤으나 공장 입주를 위한 본격적인 단지조성작업은 올해 말께에나 시작될 전망이다. 지난해 입주업체를 모집했으나 6개사에 3만5000여평에 그쳤다.

부랴부랴 공단본부는 입주 업종을 4개에서 11개로 확대하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유치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나 디지털단지로 조성하려는 애초 계획은 변질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공단본부측은 『경기는 되살아났지만 기업의 투자 여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조성이 늦어지고 있으며 올해 말께부터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1년 문전옥답을 갈아 엎어 조성한 구미공단. 30년동안 국내 전자산업의 심장부 구실을 해온 이곳에도 어김없이 디지털 바람이 불어닥쳐 새로운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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