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2000>4회-남동공단이 걸어온 발자취

「염전지역을 일궈 한국의 산업심장부로.」

한때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폐염전지대가 지금은 3000여개의 중소기업이 연간 5조9000억원을 생산하는 우리 나라 산업중심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동공단의 역사는 지난 80년 7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인천 남동의 폐염전지역 약 200만평을 공업단지로 조성하기로 결정한 데서 시작된다.

수도권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수도권지역의 용도지역 위반공장 등 이전대상 영세중소기업들을 이전시키기 위해 이 계획을 수립하게 된 것.

한국토지개발공사는 지난 85년 4월 20일부터 수인선 협궤철도변을 기준으로 내륙쪽을 1단계, 해변쪽을 2단계로 구분해 공단 조성에 나섰다. 지난 89년 12월 1단계조성사업이 마무리된 지 2년6개월만에 2단계조성사업이 완료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토지개발공사는 공단조성과 함께 86년 11월, 공업용수 다소비 업종과 공해 업종을 제외한 제조업을 중심으로 평당 18만원에 1단지 공장용지를 분양했다. 91년 10월 실시된 2단지 공장용지 분양시에는 분양가격을 37만원, 35만원, 34만원 등 6등급으로 차등 책정했다.

용지분양을 받은 1단지 입주업체들은 88년 3월부터 공장착공에 들어가 90년 말에는 총 416개 업체 중 285개 업체가 정상가동에 돌입함으로써 남동공단시대가 열렸다.

당시 정부는 남동공단조성과 아울러 공단 종업원 및 관련인구의 주택수요에 대비하고 공업단지와 주거단지간의 거리를 단축해 공단관련 인구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그 배후도시로서 연수택지조성사업을 시행했다. 현재 공단 종업원의 상당수가 93년 조성된 연수동과 최근 조성된 논현동의 대단위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다.

앞으로 남동공단은 30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인천항을 인근에 두고 있는 만큼 새 천년 서해안 시대의 개막과 함께 중소기업전문단지로 세계무역의 전진기지로서 그 몫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효원기자 etlov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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