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정책.. "풋과실"만 담는 영상산업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제아무리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엮는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해도 영화·게임·음반·방송 등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선 「문화의 시대」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한낱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때문에 정부 각 부처와 영상콘텐츠 업계는 콘텐츠 산업을 대표적인 전략 산업으로 분류, 육성책을 내놓고 있으며 신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 당국의 육성 의지와 업계의 개발의욕에도 불구하고 영상산업을 둘러싼 정부 부처간 주도권 싸움, 당정간 정책 혼선 등으로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지난해 우리 영상산업계는 정책의 혼선이나 비효율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올해라고 해서 이같은 사태가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제는 기존에 나와 있는 정책들을 효율적으로 묶고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 영상산업의 육성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이다. 각 분야별로 정책의 혼선 또는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는 부분을 집중 조명해 본다.

<콘텐츠>

 문화의 시대 21세기에는 각종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디지털의 옷을 입고 현실세계와 사이버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개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미 이같은 움직임은 MP3 음악파일, 인터넷 영화, 주문형 온라인 극장,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등의 상품의 등장으로 그 틀이 잡혀가고 있으며 앞으로 그 형태와 내용이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는 디지털 문화산업을 육성할 관련 법이나 제도가 미흡한 상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아날로그 문화산업에 대한 법이나 제도도 정부 부처간, 당정간 정책 혼선 및 역할분담의 미비로 산업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입장권 통합전산망 사업」을 들 수 있다.

 지난해 9월 주무부처가 문화관광부에서 국세청으로 바뀐 입장권 통합전산망 사업은 표준 사업자 선정을 놓고 업계의 반대가 극심했으며 지난 정기국회에선 독점 논란이 다시 제기되면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극장업계가 인터넷업계와 제휴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예매가 가능한 독자적인 전산발매시스템을 구축, 정부의 사업추진 방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기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복수 사업자 선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전산망 구축에 드는 비용을 정부도 일부 부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당분간 큰 진통이 예상된다.

 「스크린쿼터제」 문제도 정부 부처간 정책혼선으로 혼란을 가중시킨 사례중 하나다. 당초 문화부는 99년초 장관 신년사를 통해 국내 영화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2002년까지는 스크린쿼터문제를 재론치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통상협상을 추진하던 외교통상부가 단계적 축소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지난 한해 동안 영화계는 이 문제로 온통 벌집 쑤셔놓은 듯했다. 문화부는 소문의 진상을 파악, 진화에 나섰고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축소 저지단을 꾸려 외교통상부장관 면담 및 미국정부에 항의방문을 단행하는 등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결국 정부와 영화계는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가 넘어설 때까지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잠정 보류하기로 암묵적 합의, 사건이 일단락됐으나 명확한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밖에도 지난해 「영화진흥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였던 「등급외 등급 마련 및 성인전용관 설치」 문제는 정부가 개혁 의지를 갖고 소신있게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기 국회에서 여권내 일부 의원들과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백지화됐다.

 이 문제 역시 올해도 지속적인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아 저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개정 저작권법이 오는 7월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수만건의 디지털 저작물이 유통되고 그 행태도 각양각색이어서 과연 저작자들에게 일일이 사전 허락을 받도록 하고 있는 이 법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업계 전문가들은 7월 시행 전까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관련 시행령 및 시행 규칙 정비작업을 마치고 저작자와 이용자 사이에서 이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는 집중관리단체를 선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게임>

 최근 게임이 일약 고부가 문화상품으로 떠오르면서 정부 당국과 산하 단체가 경쟁적으로 게임산업 육성책을 내놓고 있다.

 1년전까지 제대로 정비된 관련법규조차 하나 없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관계부처와 단체들의 경쟁적인 게임산업 육성 비전이 자칫 잘못하면 산으로 배를 몰고갈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현재 게임산업 유관 부처는 문화관광부·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 등이다. 특히 게임산업을 둘러싼 문화부와 정통부간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게임업계가 공공연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도 비일비재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부는 지난해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제정을 계기로 「게임음반과」를 신설했고 「게임종합지원센터」를 설립, 게임산업 주무부처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30억여원의 국고를 지원센터에 투입했던 문화부는 올해도 「문화산업진흥기금」을 포함, 게임산업에 최소한 25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게임지원센터 확충·전문인력 양성·해외수출지원 등 문화부의 게임산업 육성 의지는 거의 전방위적이다.

 정통부 역시 그동안 관계기관 및 민간단체를 통해 다져온 소프트웨어산업 인프라를 토대로 문화부 못지 않은 의욕을 갖고 게임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 98년 출범한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전략적 육성 부문으로 선정했으며 특히 게임·디지털 애니메이션·교육용 콘텐츠 등을 주력 수출 아이템으로 키워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은 이미 전국 8개 지역과 미국 새너제이에 거점을 설치, 유망 게임업체를 입주시켰으며 「정보화촉진기금」 「정보통신투자조합」 등을 통해 조성된 수백억원의 벤처지원자금을 게임업체에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정통부는 향후 5년간 총 100억원의 지원자금을 투입, 게임기반기술 확보·게임기술표준화·유통구조 개선에 걸쳐 광범위한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문화부와 정통부에 이어 그동안 게임산업육성에 별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산업자원부도 지난해 게임기에 대한 특별소비세가 폐지된 것을 계기로 업소용 아케이드 게임산업 육성에 일조를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정부 부처들이 앞다퉈 게임산업 육성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자원 및 예산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게임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술을 요하는 문화상품인 점을 감안하면 특정 부처가 독점적으로 지원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으나 최소한의 역할분담은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게임산업 육성정책을 입안할 전문가도 많지 않아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선 정부부처·업계·학계를 망라한 자문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형오기자 ho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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