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콤 에릭 베나모
만일 몇년 안에 당신이 끝없는 일더미 속에 파묻혀 도망칠 수 없는 날이 오게 된다면 스리콤 회장 에릭 베나모(45)를 원망하게 될 지 모른다. PDA를 전자수첩 수준에서 무선컴퓨터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스리콤의 베나모 회장이다. 그는 지구촌을 글로벌 데이터 네트워크로 묶어 어디를 가든 통신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베나모가 팜파일럿을 세상에 내놓을 때는 회사원들이 무거운 일상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정반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대신 헬스센터에서, 또는 병원에서, 편의점에서, 식당에서, 전국 어디에서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스리콤의 설립자는 이더넷을 처음 만든 밥 멧칼페지만 이 회사를 오늘날 정상의 네트워크 업체로 올려놓은 사람은 베나모 회장이다. 그는 4년 동안 자이로그에서 경험을 쌓고 브리지커뮤니케이션스사를 공동설립했다.
브리지커뮤니케이션스는 첫번째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IP 라우터 생산업체였다. 87년 이 회사가 스리콤에 합병되면서 베나모는 서른 둘의 나이에 스리콤 워크스테이션 비즈니스를 총괄할 기회를 잡게 됐다.
베나모가 CEO로 취임한 것은 스리콤이 위기를 맞았던 90년. 당시 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었다. 주가는 그 전해보다 25%나 하락했다.
네트워크 OS인 랜 매니저는 팔리지 않았고 서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베나모는 결단을 내렸다. 컴퓨터와 통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대신 허브와 라우터 스위치를 포함한 아키텍처를 공급하는 네트워크 전문업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경영은 호전됐고 US로보틱스와의 성공적인 인수합병은 스리콤을 네트워크 업계에서 시스코에 이어 2위 업체로 만들었다.
그는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 단지 기술만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는 경영인으로 알려져 있다. 『합병이 일어나면 보통 설립자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 새로운, 그리고 더 큰 꿈을 갖도록 해주는 것뿐이다. 기업은 단지 스프레드시트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게 베나모의 지론이다.
베나모가 경영권을 맡으면서 스리콤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94년에는 처음으로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원래 라우터·허브·스위치·모뎀 같은 네트워크 장비들이 주력품목이었지만 US로보틱스 인수 후에는 컨슈머마켓으로 영역을 넓혔고 지금은 팜파일럿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됐다.
IT업계에서는 스리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동물 캐릭터를 돌고래라고 말한다. 영리하고 동작이 민첩하고 물 속에서 지칠 줄 모르며 날렵하게 헤엄치는 동작이 회사 분위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팜파일럿은 해양박물관의 돌고래처럼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다.
베나모는 글로벌 데이터 네트워킹과 로컬 에어리어 네트워킹 기술 분야의 저술가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그는 뛰어난 엔지니어인 동시에 신사다운 품행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네트워크 업계의 CEO들 가운데 호감가는 인물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그의 이름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만일 스리콤 회장이 되지 않았다면 뮤지컬그룹에서 기타를 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로맨티스트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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