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에 영화가 들려주는 미래의 메시지는 바로 존재의 부정이다. 국내에 테크노 열풍을 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던 「매트릭스」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사육하고 조종했다면 「13층」에서 다루는 현재의 세계는 바로 미래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 이젠 현재의 세계마저 컴퓨터게임 안에 가둬놓고 마는 사고의 발상은 느린 영화적 호흡에도 불구하고 꽤나 충격적이다.
인간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전선덩어리에 불과하며 마음대로 의식을 조종할 수 있는 미래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1930년대와 1990년대, 2020년대를 잇는 「13층」은 소름끼치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조지프 러스낙 감독은 현란한 미래세계의 이미지 대신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복고적인 이미지와 차가운 금속성이 교차하는 경제적인 SF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짓는 사유와 철학을 쓰레기통에 구겨넣는 이 위험스런 줄다리기는 꽤나 발칙하고 불쾌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와 상관없이 무서운 기세로 상상력을 자극해 온다.
현재 컴퓨터회사의 사장인 풀러는 1930년대로 돌아가는 시뮬레이션 게임기에 열중해 있다.
1930년대에서 그는 「그리어슨」이란 이름을 가진 건실한 책방주인이지만 1999년을 살고 있는 풀러의 의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면 호텔클럽에서 마티니를 마시며 밤마다 여자들과 섹스를 즐기는 인물로 변해있다. 어느날 풀러는 현재의 세계에 대한 의문의 해결점을 발견하고 게임속으로 들어가 편지를 남기지만 현재로 돌아온 세상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풀러의 부하직원이자 친구인 더글러스 홀은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에겐 전혀 기억이 없다. 유일한 단서는 풀러가 홀에게 남긴 전화 메시지와 피묻은 자신의 셔츠뿐.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그를 지목해 오고, 풀러의 딸이라 주장하는 제인은 홀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한다. 홀은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직접 1930년대로 들어가는 것 뿐이라 생각하고 프로그래머인 휘트니의 도움을 받아 과거로 돌아간다. 1930년대에서 은행원 퍼거슨의 몸을 빌려 눈을 뜬 홀은 너무나 정교하게 짜여진 시뮬레이션 게임에 놀라며 풀러의 흔적을 뒤쫓는다.
「13층」의 매력은 한명의 배우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옮겨가며 보여주는 변신이다. 마치 다중인격자를 대하듯 외모는 똑같지만 각기 다른 시대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설정은 의식과 무의식의 교란을 일으키며 현 세상에 대한 싸늘한 냉소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독일 출신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답게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에게 현재세계에서 미래세계로의 행복한 구원을 안겨준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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