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다지 승산이 없어 보이거든요.』
앞으로 5년 후에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안연구소)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안철수 사장(38)이 던진 의외의 대답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철수 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의아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안 사장을 잘 아는 사람은 한마디씩 할 것이다.
『그 사람 걱정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국내 패키지 소프트웨어(SW) 분야 1세대로 꼽혔던 이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부침없이 성장해온 인물. 안철수 사장의 이런 성공의 원동력은 늘 걱정과 고민 속에서 스스로를 엄격히 단속해온 이면에서 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안연구소는 올해 12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올초만 해도 그는 2000년도에 100억원 매출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매출이 26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야심찬 목표였다. 그러나 10월말 현재 이미 100억원을 넘어선 상태. 매출 100억원은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계 기업들에 시장을 대부분 내준 패키지 부문만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상반기에 터졌던 CIH바이러스 대란이 시장 급성장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이 갑자기 커진 것이 아니라 『이제 정상화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난 98년 백신SW 세계 시장은 1조2000억원, 반면 국내시장은 고작 35억원에 불과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백신 시장 역시 세계의 1%, 그러니까 적어도 120억원 정도는 됐어야 했다는 것이 안 사장이 말하는 정상화론의 근거다.
『시장규모가 35억원이었던 98년이 오히려 비정상이었습니다. 그래서 CIH 바이러스 피해가 국내에서 제일 심각했던 것입니다.』
그가 올해 예상하는 백신 시장규모는 150억원 정도. 이 가운데 안연구소의 수정 매출목표가 120억원이나 되니 사실상 독과점 기업인 셈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백신 시장의 신규 수요창출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도 된다. 안 사장의 고민과 걱정이 또 시작됐다.
『예상보다 일찍 시장 정상화가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안 사장은 매출이 늘었는데도 구조조정을 했다. 지난 8월 삼성동으로 사무실을 확장 이전하면서 20여명의 인력을 줄인 것이다. 고객서비스 업무를 외부업체에 아웃소싱하고 전체 조직을 시스템엔지니어 위주로 재편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했지만 그 속에는 치밀한 위험관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안연구소는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해 합작사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음달 1일 나모인터랙티브와 리눅스 관련 벤처기업을 공동으로 설립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데이콤·펜타시큐리티 등과 함께 정보보호서비스 업체인 코코넛을 설립했다. 또 5월에는 데시정보시스템이라는 보안SW 업체를 인수해 PC용 데이터 보안패키지인 「앤디(EnDe)」를 출시한 바 있다. 이 모두가 위험분산을 위한 안 사장의 새로운 전략이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발전시켜가는 것은 원칙입니다. 안연구소는 패키지 전문기업이니 만큼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관련된 분야에서 시장을 넓혀야 할 때는 그 분야를 잘 아는 업체를 인수하거나 연합하는 방식으로 나간다는 전략을 확고히 했다. 워낙 조심스러운 행보 때문에 안연구소는 벤처가 아니라는 농담까지 들을 정도지만 조심스러움 속에는 그만큼 치밀한 위험관리가 계산돼 있다.
『지역 게릴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자만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된다는 거죠. 거대 자본인 외국업체와 언제나 정면승부가 가능하겠습니까.』
전문기술 업체끼리 합작회사를 설립해가고 있는 안 사장의 전략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기적으로 승산이 없어 보인다』는 안 사장의 걱정속에는 이를 헤쳐나갈 전략이 이미 마련돼 있다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약력
62년 부산출생
80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88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 개발
95년 3월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설립
9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공대 및 와튼스쿨 경영공학 석사
소프트웨어벤처협의회 회장(현재)
아시아앤티바이러스연구회 부회장(현재)
한국통신정보보호학회 이사(현재)
99년 한국과학기자클럽 선정, 올해의 정보통신인
김상범기자 sb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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