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육상 경주에서 출발이 늦으면 그만큼 앞선 선수를 따라잡기가 어렵다. 장거리 경기는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하지만 단거리에서는 전력질주하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장거리도 더 빨리 뛰는 것 말고 앞선 사람을 추월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나올 수가 없다.
요즘 각국의 첨단 기술경쟁이 치열하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더 많이 팔기 위함이다. 나아가서는 지속적으로 시장과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다. 물건을 남보다 많이 팔아야 기업과 국가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 해당 분야의 리더 역할도 가능하다. 기술 빈국들은 그래서 기술자립이나 기술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다.
우리도 2025년까지 세계 7위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술입국 반열에 오르는 일은 가만히 손놓고 있어도 되는 게 아니다.
기술자립국이 되려면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대략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독자기술을 개발하는 일이다. 남보다 자신 있는 분야 또는 남이 소홀히 하는 분야의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것이다. 남이 보유하지 못한 기술을 개발하면 경쟁력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근 등장한 인터넷 분야의 새로운 직종들은 좋은 본보기다. 남이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한 결과 그 분야의 전문가로 등장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술개발비를 늘리는 일이다. 독자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가령 농사짓는 사람이 병해충 방제나 논매기, 시비 등을 때맞춰 해주지 않는다면 풍년농사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발비를 투입하지 않았는데도 첨단기술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경우 연구개발비에 쓰는 정부예산은 국방비의 3배나 된다고 한다. 이는 전세계 연구개발비의 40% 정도라니 미국이 세계의 선두에 서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독자개발한 기술은 해당기업은 물론이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국력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지금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치고 독자기술을 갖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만족할 만한 수준라고 보기 어렵다. 세계에 내로라 하고 내세울 만한 독자기술을 많이 보유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기술개발비를 남보다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해마다 느는 것은 로열티뿐이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기술의존도는 전체의 77%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의 기술개발 형태는 외국의존형 아니면 추종형인 경우가 많다. 대다수 국내 기업들은 독자기술 개발의 어려움을 내세워 외국기술을 응용하거나 모방하고 있다. 그것이 우선은 편하고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독자기술 개발에 따른 막대한 비용부담과 상용화까지의 기간에 발생하는 여러 위험부담 등을 고려하면 외국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안전운행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사탕이 먹기 좋은 것처럼 우선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평생 남의 뒤만 따라가야 한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앞선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우리가 기술입국을 지향한다면 남한테 기술을 의존하거나 남을 뒤따라가는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개발비를 늘리고 독자기술 개발에 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야 기술자립 또는 기술입국이란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요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더욱이 밑천이 들지 않는 장사란 없다. 뜻을 이루려면 그만한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새 천년을 맞아 우리가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출발을 늦었지만 더 빨리, 그리고 멈춤없이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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