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이동전화 역사는 1960년에 시작된다. 58년 특수목적용 무선통신 시설이 처음 도입된 지 2년만에 국내에는 단방향 수동 교환방식 차량이동전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IMTS(Improved Mobile Telephone Service)로 첫 선을 보였던 당시 이동전화는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정부 기관만을 대상으로 한 시도에 불과했다.
일반 대중에게도 이동전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이듬해인 61년 8월. 그러나 이 또한 통화품질이 불량했고 65년까지 고작 78명의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그쳤다.
이동전화가 그럴 듯한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였다.
비록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한정됐지만 교환원을 거치지 않고 통화하는 기계식 차량전화 IMTS가 73년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75년에는 울릉도와 육지간 극초단파 무선전화와 NMRS(New Mobile Radio System)가 개통됐다.
76년에는 반전자식 차량전화가 77년에는 금산 제2위성통신지구국(인도양지구)이 개통됐으며 상주인구 50인 이상인 섬마을에도 무선전화시설이 들어갔다.
70년대의 도전을 토대로 이동전화에 대중화의 발판이 마련된 것은 80년대 무선호출과 북미식 아날로그 이동전화(Advanced Mobile Phone Service)가 상용화되면서부터다.
84년 4월 한국이동통신이 시작한 차량이동전화는 오늘날 2200만 이동전화시대의 시발점이었고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 마침내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서비스가 시작됐다. 무선호출 가입자수는 10만명을 넘어섰다.
97년 말 1500만 가입자 정점에 이르기까지 무선호출은 끝없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이동전화는 96년 CDMA 디지털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며 전성기에 진입했다.
97년 10월 상용서비스에 들어간 개인휴대통신(PCS)은 이동전화 시장의 또 다른 견인차였다.
5사 경쟁체제로 돌입하면서 국내 이동전화 시장은 황금기를 맞게 됐고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순식간에 2300만명을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통신인들은 지금의 이동전화 서비스를 넘어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을 준비하며 꿈의 통신망을 구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열리는 오는 2002년에는 일반인들도 초고속 데이터 통신을 맛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이동통신 역사는 빠르게 가속도를 붙여가고 있다.
김윤경기자 y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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