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뉴스&밀레니엄> 커버스토리.. 기술가치도 자신의 일부

 전자부품기술 제휴선인 일본기업과 로열티 재협상을 앞둔 S사는 요즘 곤경에 빠졌다. 턱없이 높은 로열티 비용을 낮추려고 하지만 그 근거를 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기업은 명확한 자체 기술 평가 기준에 따라 이미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한 상태. 그러나 S사는 이를 반박할 아무런 기준을 갖고 있지 않아 또다시 비싼 로열티를 물어야 할 판이다. E사는 자금조달을 위해 기술을 해외기업에 팔기로 했다. 협상테이블에 마주앉은 외국기업은 자체적으로 이 회사의 기술을 평가해 가격을 내놓았으나 E사는 단기간에 객관적인 기준없이 산출한 가격을 제시했다. 자금난에 쫓긴 나머지 이 회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싼 값에 기술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반면 벤처기업 C사는 지난 97년 국내 한 금융기관에 주식 11%를 넘겨주고 5000만원의 자본금을 단숨에 50억원으로 불렸다. 주식인수전 금융기관은 몇 달 동안 광대역 CDMA칩, 비메모리 반도체 등 이 회사 기술의 가치와 경영능력 등을 평가했다. 그 결과 이 회사의 매출은 2년 뒤 10배 이상 뛸 것으로 나타났고 인수가격을 후하게 쳐줬다. C사는 기술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아 엄청난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산업사회가 지식사회로 탈바꿈하면서 무형의 기술가치가 갖는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과거에는 건물이나 토지와 같은 유형자산이 기업의 경쟁우위 요소였으나 이제는 기술과 같은 무형자산이 기업경쟁력을 재는 척도가 된 것이다. 기업에 투자하고 대출하는 금융기관들도 그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주는 기준으로 무형자산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기술개발의 다변화로 이제는 모든 기술을 혼자 개발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기술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기술 시장」이 급격히 커진 것이다.

 기업들은 필요한 기술을 다른 기업에서 사오며, 필요로 하는 기업에 내다 팔기도 한다. 또 아직 상용화하지 않은 기술을 스스로 상품화하는 게 나은지, 다른 회사에 파는 게 나은지 객관적으로 검증받으려는 연구개발자와 기업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기술에 내재된 가치를 금액이나 등급으로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술가치 평가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이 평가기법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기술인가」 「상용화까지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나」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는가」 「실용화를 위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가」 「후발업체의 추격이 쉬운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익을 보장할 것인가」 등 기술가치에 대한 모든 것을 훑어볼 수 있다.

 애초 이 기법은 지적재산의 침해에 따른 손해액을 산정할 때나 라이선스 계약시 로열티를 산정할 때 유효하게 이용되는 도구였다. 이제는 신설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간 인수·합병시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로 그 쓰임새가 넓어진 것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공공 또는 민간 기술이전 기관들은 자체 개발한 기술가치 평가도구들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 기업과의 기술 이전과 매매, 인수와 합병 등의 협상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기술가치 평가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추세다. 정부가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어 기술가치 평가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기술가치 평가 수준은 아직 초보적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평가 모델은 물론 이렇다 할 만한 평가 사례도 구축하지 못했다.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는 더러 있으나 그 기술의 사업성과 시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미래 산업발전의 척도가 될 벤처기업 육성을 놓고 볼 때에도 기술가치 평가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사회문제시되고 있는 벤처기업육성자금의 악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치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져 첨단 또는 전문 기술에 대한 평가작업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평가대상에는 기술 그 자체의 가치와 함께 비즈니스적 가치도 포함되는 것이므로 평가자의 안목이나 자질도 쟁점이 될 수 있다.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도 두말할 나위 없다. 그 대안의 하나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전문가 풀제도. 각 분야 엔지니어들과 함께 변리사·변호사·공인회계사·전문경영인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를 기술가치 평가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기업경쟁력을 높이려면 우수한 외부기술을 사들여 한차원 높은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여기에는 적절한 보상이 뒤따르며 기술가치 평가는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이다. 앞으로는 기술 수출도 늘어날 것이다. 평가기준이 없어 제값을 받지 못한다 해도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21세기 지식사회를 앞두고 기술개발만이 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정당하고 신뢰할 만한 가치 평가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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