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80)

 고려방적에 도착했을 때 공장장 윤두수와 기술주임 임창룡이 남아서 우리를 기다렸다. 공장장실에서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 소파에 앉았다. 윤두수는 머리가 하얗게 세었는데, 기술자라기보다 학자 같은 분위기를 주었다. 나는 그를 세번째 만나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표정이었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기술주임 임창룡은 몸집이 작은데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초조해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서불안한 분위기를 주었다. 그는 자주 입술을 혀로 빨며 배용정의 얼굴을 쳐다보곤 하였다. 무슨 말을 할 때면 먼저 배용정을 쳐다보았던 것이다.

 『부분적으로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오작동이 일어난 일이 있는 것은 모두 교환해 드리지요. 그러나 전량을 교체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장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나 역시 동감을 합니다만, 그동안 수차에 걸친 간부회의 결과 전체를 교환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다른 업체의 것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만, 일단 계약을 하여 썼던 것이기 때문에 계속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교환이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다른 업체 것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다른 업체라면 어디 것을 말씀하십니까? 일본 것을 가져온다면 모르지만, 자동시스템을 개발한 것은 우리가 유일한데요.』

 『FA44라는 제품은 유일하지만, 공장자동화 시스템은 일본 것도 있고, 우리나라도 대기업에서 개발하여 지금 시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자동시스템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이 시판되고 있나요? 어디 것인가요?』

 아직은 내가 개발한 것이 유일하다고 믿고 있는데, 비슷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글쎄요. 모르고 있었나요? 대동컴퓨터에서 나왔던데요?』

 대동컴퓨터는 이번에 새로 생긴 재벌 기업의 방계 회사로서 나와는 경쟁이 안 되는 큰 곳이었다.

 『그래요? 그곳에서 개발했다는 사실은 처음 듣습니다. 어쨌든 우리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대동컴퓨터에서 개발한 시제품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오작동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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