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이 외자를 유치했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회사 경영에 있어서 이전보다 난관에 맞닥뜨릴 수 있다.
외국 투자가들은 투자한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기업 운영에 관여하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국내 기업들은 외국 투자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 들 것이다.
국내 기업과 외국 투자가의 이해관계가 사뭇 다르다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국내 기업의 외자유치 실적을 보면 외국 투자가에게 소유권을 내준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소유권을 내준 기업도 상당수가 경영권을 보장받고 있다. 일단 경영권을 방어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아직은 투자초기라서 그렇긴 하지만 외국투자가들은 언제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경영권에 손대려 할 태세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0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한 K사는 외국 투자가의 요구에 따라 전사적자원관리(ERP)를 도입했으며 직원들에게는 국제품질보증체제인증(ISO) 관련 자격증 취득을 의무화했다. D사 역시 외국투자가의 요구대로 사외이사제를 도입했다.
이러한 요구는 효율적인 선진 경영기법의 수용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내 실정과 전혀 맞지 않는 요구도 나올 수 있다.
외국투자가들은 앞으로 인사·조직·재정 등 전분야에 걸쳐 간섭하려 들 것이다.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봐야 하는지 정체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달 초 국회의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G사의 해외전환사채(CB) 발행이 도마위에 올랐다.
G사가 지난 봄 두차례에 걸쳐 발행한 CB를 말레이시아 역외펀드에 넘기면서 발행가를 당시 주가의 21∼31%에 헐값으로 책정한 것에 대한 의혹제기였다.
G사는 CB 인수의 합의시점과 인수시점의 사이에 국내 주가가 폭등한 것으로 헐값 발행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사례는 진위 여부를 떠나 국내 기업의 외자유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계약 논란을 야기했다.
국내 주요 기업의 자산 가치는 주식을 기준으로 지난해 초에 비해 20∼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국 투자가가 100억원을 줘야 인수할 기업을 20억∼30억원에 인수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자금난에 쫓긴 나머지 외자유치에 급급한 국내 기업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지분이나 자산을 파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한 SW벤처기업가는 『두달 전 접촉했던 외국 투자가가 막상 계약을 체결할 시점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와 들어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IMF 체제 이후 정부는 외국인투자업종 확대와 각종 혜택 등 외자유치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럼에도 불구,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로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정부는 투자이익금의 송환, 투자원금의 회수 등은 물론 증권이나 부동산 투자에 대한 보장 등 더욱 강도높은 투자 보호장치를 검토중이다.
투자의 실패는 투자가의 몫이다. 이 명제는 어느 나라 투자가들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적극적인 외자유치도 좋지만 아직 투자에 대한 국제 규범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 투자가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투자보호장치와 관련한 국제 규범이 이르면 올해 말께 열릴 뉴라운드에서 나올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정부가 투자보호장치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신화수·정혁준기자 hsshin·hjjo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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