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환 24/7미디어코리아 대표
시스코·아마존·야후·델·e트레이드·e베이.
이 회사들은 대부분 창업과 동시에 미국의 벤처펀드로부터 자금을 확보하고, 전문경영인 영입이라는 절차를 밟고 재빨리 전세계에 자회사, 혹은 지사 설립을 통해 세계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소위 말하는 글로벌 마케팅을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본격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분명히 세계적인 미디어다. 따라서 그 비즈니스의 영역 또한 인터내셔널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빨리 비즈니스를 국제화하느냐가 결정한다. 그 회사의 사업모델이 튼튼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국제화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해 나가고, 제휴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며, M&A를 통해 경쟁사를 흡수해 재빨리 세계에서 가장 강한 회사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를 구호로 내건 국내 대기업들은 디지털 혁명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돌이켜볼 일이다. 정보의 안테나를 곳곳에 세워놓은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누군가가 목청 높여 인터넷에 대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정책을 결정하는 경영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키워온 산업사회의 모델인 내 손으로 다하기를 통한 독점 사업구조, 철저한 사업계획 수립을 빙자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회피 등과 같이 철저하게 반인터넷적인 발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의 주역으로 초기 참여기회를 다 날려버렸다.
요즘 와서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외국 인터넷업체 국내 법인의 자산가치가 누구의 장난인지도 모르는 채 1조원이니 2조원이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언론은 날마다 인터넷 해서 떼돈 번 기업과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돈이라는 돈은 모두 펀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 판에 끼지 못하면 바보가 된다. 부랴부랴 외국 브랜드 하나 차고 들어와 너도 나도 이 작은 나라 안에서 한탕 긁어모으기가 시작되고 있다. 미국 유명 인터넷 쇼핑업체의 수백개 거래처 중 하나와 계약하고 언론에는 미국의 유명 인터넷기업과 제휴했다고 터뜨리면 다음날 그 회사 주식은 불쌍한 우리의 묻지마 투자자들에 의해 급상승 곡선을 그린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은 나라에 투기성 자금과 앞도 뒤도 보지 못하고 돈만 보고 뛰어들어온 기업가 정신을 팔아먹은 경영인들로 인해 인터넷으로 재편되는 세계 경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찾지 못한 채 불과 4∼5년 만에 인터넷 비즈니스의 삼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음이 눈에 보인다.
디지털 경제는 지금 인터넷이라는 새 무기로 단장한 미국의 신제국주의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은 유럽대로,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단단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사의 손정의 회장은 이미 초기에 세계 인터넷시장으로 뛰어들어 자기의 지분을 확보했다. 일본의 NEC 등도 일찌감치 인터넷산업의 본바닥에서 큰 손임을 자청하며 세계시장의 일정 지분을 확보하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China.com 등 홍콩을 거점으로 하는 중국도 거대한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화교권을 규합해 새로운 아시아의 인터넷 경제체제를 구축해 거꾸로 미국시장을 위협하고 있을 정도다.
그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채 손바닥만한 국내 시장을 나눠 먹으려고 외국 브랜드의 국내 지사 역할을 자청하는 국내 기업들의 대응방식은 참으로 가관이자 억장이 무너져내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엄청난 힘과 몸집을 가진 공룡도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스스로는 대단하고 탄탄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기업들이 그들이 왜 사라져야만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사라져 갔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인생만 유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도 유전하는 것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에 의한 새로운 디지털 경제체제에 이 땅에 새로운 주인은 누가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누가 경영학 교과서에 모범으로 남게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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