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의 간판인 반도체가 3년간에 걸친 혹독한 불황을 이겨내고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국내 반도체업계의 주력 제품인 64MD램이 연일 최고 가격을 갈아치우며 무서운 기세로 폭등, 국내 반도체산업 사상 최고의 순익을 남겼던 지난 95년에 버금가는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둘째주에 4달러대까지 폭락했던 64MD램의 현물시장 가격이 불과 두달 만에 4배에 육박하는 15달러선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올해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순익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업체인 삼성전자의 64MD램 월 생산량은 대략 3000만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64MD램 가격 1달러 상승이 가져오는 매출 증대효과는 월간 3000만달러다. 64MD램 가격이 10달러 정도 오른다고 가정하면 월간 매출은 3억달러 가량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앞으로 남은 3개월여간 15달러대 가격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4달러대일 때보다 무려 10억달러, 우리 돈으로 1조원 이상의 추가 매출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64MD램 월간 생산량이 각각 2000만개 가량인 현대전자와 현대반도체(전 LG반도체) 역시 매출 증가속도가 급커브를 그리고 있다.
더욱이 연초 64MD램과 동반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며 1달러대 초반까지 내려갔던 16MD램 가격도 최근 2달러대 중반까지 회복되는 이른바 「쌍끌이 장세」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64MD램과 256MD램 사이에서 한시적인 제품으로 여겨지던 128MD램이 상반기 64MD램 가격이 폭락할 때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어려운 시기에 효자노릇」을 한 것도 국내 업체들에는 행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3사의 세계 D램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갑자기 불어닥친 호황의 과실 절반 정도를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거둬들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같은 사실은 선행 투자가 다음 세대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반도체산업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력 반도체시장 조사기관들이 향후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밝게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세대를 준비할 여력을 충분히 비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3년간의 기나긴 불황을 겪으면서 외국 메모리 반도체업체의 상당수가 지난해 말부터 D램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축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관한 한 향후 수년간 국내 업체들의 독주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결국 국내 반도체산업은 이번 호황기가 전세계 D램 분야의 선두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술력과 자본력에서 경쟁업체와의 격차를 현저히 벌린 삼성전자, LG반도체와의 통합으로 생산량측면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현대전자가 미국의 대표적인 D램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일본의 NEC사와 더불어 세계 D램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이른바 빅4체제의 절반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세계 유수의 반도체 시장조사기관들은 일제히 메모리 반도체시장이 올해 말에 서서히 회복국면에 접어들어 2000년과 2001년에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밝히는 또 하나의 불빛은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PC의 메인메모리 중심으로 성장해온 메모리 반도체가 디지털 기록매체로서의 기능성을 높여가면서 서서히 응용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 사용이 일반화된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관련기기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에 이어 디지털TV, 홈서버, 벽걸이용 오디오 및 비디오 등 대용량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기기의 등장이 예고되면서 메모리 반도체가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시장조사기관은 오는 2005년께 세계 D램시장에서 PC용 메모리 비중이 절반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놓고 있을 정도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세미피아컨설팅그룹의 김대욱 사장은 『국내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은 기술과 자본 등 모든 측면에서 경쟁사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이는 결과적으로 차세대 기술 선행개발에 따른 표준 주도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산업과 겨룰 만한 외국기업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전망했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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